연중 제 22주일
21. 8.29 주임신부
+ 찬미예수님 (하느님의 계명과 인간의 법)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인으로서의 여정을 나름의 열과 성의를 다하면서 걸어왔습니다. 하느님을 따르기로 약속했던 세례 때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 길에 들어선 것인지를 돌아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신명기의 저자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탈출에서부터 구원의 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회고하면서, “너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 외에 어떤 것도 보태거나 빼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고백 역시, 그 출발은 창조주 하느님을 믿고, 외아들이신 구세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의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여 사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중심에 있는 가르침은 바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 나의 소중한 것을 내어놓아 가장 소중한 이웃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대해 세상은 대단하게 알아주지 않지만, 때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목숨을 버릴 만큼 어떤 이유로도 양보할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속에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정결례법을 지키지 않았다 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공격하는 유대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하느님께서 주신 그 법의 근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결코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2천년 유대인들이 범했던,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의 의미를 잊어버린 행위들은 불행히 오늘날까지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10가지가 있다고 합시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상황은 그중 1가지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열 가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잊어버리면, 그 모든 것을 한다 해도, 본래 이루려고 했던 신앙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행위가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님과 그 힘인 성령을 받아들여, 그 이끄심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는 있지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나의 인간적 생각과 주장이 더 앞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수많은 위험과 유혹과 왜곡에 노출되는데, 그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나의 역량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오직 인간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언제라도 내가 믿는 주님의 말씀과 그 안에 담긴 출발점은 어디인지,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어떤 이유로도 지켜야 하는 가르침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잊지 않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에로 이끌고자 오셨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그 주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들은 그대로를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들,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 그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분열시키는 요소들을 돌아보고, 과감하게 내어 버릴 수 있는 믿는이의 용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바들에 대해, 오늘도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청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