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4주일
2021. 7.4 한강주임
+ 찬미예수님 (고향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우리는 지금까지 몇 주간에 걸쳐, 환자들을 돌보시고 치유해주시며, 나아가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시기도 하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어떤 기적으로도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하십니다. 그것은 소위 그분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의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중에는 어느 분야에 관해 매우 해박하고, 똑똑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그러한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으시고, 그 기적들을 통해 당신은 여느 예언자나, 일시적인 기적의 힘을 보여주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다 라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안다는 것이, 믿음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신앙에 반하는 오만이 되거나, 인간적 결론으로 끝나고 마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 11,25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는 그러한 우리들의 태도를 다시 살펴보게 합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리나이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복음선포의 여정에서 예수님이 부딪쳤던 가장 큰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은 예수님을 쫓던 이들이 아니라, 소위 정통 유다인들로 하느님을 안다고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역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예언자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예언자는 그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대신하여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권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언자들이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유다인들 믿음의 인간적 면을, 그리고 그 한계를 직설적으로 지적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나의 구원을 위한 말씀이 내 옆에 있고 이끌려 해도, 나 자신의 능력을 믿고, 그 시각에서 출발하는 나의 판단을 과신할 때, 우리는 가까이 다가온 진리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그 주님께서 이끄시는 길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점은 스스로 깨달아 가는 길이 아니고, 다가오는 생명의 말씀을 귀와 마음을 열고 들어야만 가능한 길입니다.
성경을 통한 말씀은 신앙인들 삶의 근본입니다.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과 그 내용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만사와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이끄시는 하느님의 뜻을 잊지 않고,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이 가야하는 길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진리가 둘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 하나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가다듬어야 하며,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실 분은 오직 주님 한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즉, 늘 우리의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있어야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께서 이끌어줄 그 길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보다 충실하게 준비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오늘 말씀의 의미들을 잘 간직하고, 한 주간을 지내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