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21. 6.6 한강주임
+ 찬미예수님
성령강림을 맞이하면서, 하느님의 힘이 이제 우리 모두와 함께하심을 기념했던 교회는, 지난주에 우리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기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모든 것을 몸소 우리에게 알려주신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성체와 피인 성혈의 의미를 새기려 합니다.
주님께서 알려주신 복음은 말로서만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럴듯한 논리나 감언도 아니셨습니다. 당신의 온 삶으로,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과 그 피로, “나는 너희를 지극히 사랑하니,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구원을 얻으라.”고, 죽음에 이르시기까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 말의 실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은 또 다른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란 내 존재,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을 포기하는 이유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알아들은 듯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실천했다면, 분명 우리 자신과 세상은 이미 달라져야 하고,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던 문제들도 더 이상 내 삶 속에서 큰 의미를 갖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개념과 내용이 달라져야 하고, 더욱이 세상이라는 물질적 세계의 벽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십자고상이 있습니다. 200여 년 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바라보던 외교인들의 눈에, 십자가에 처참하게 매달려 죽은이를 믿는, 그리고 더 황당하게 그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다는 서학, 천주교 신자들은 거의 실성한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선조들의 그러한 모습은 도무지 당시의 어떤 기준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고, 그 고통과 죽음을 찬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까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에 동의하고,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사랑 자체’이신 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을, 그리고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해주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영원한 삶을 믿습니다.
죽음 너머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주님의 부활을 목격함으로서 믿게된 사람들입니다.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또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삶을 받아들였다면, 우리에게 걱정이, 두려울 것이 과연 있을까? 반문해 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그것이 손해이거나 불행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또 다른 자세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극도의 고통 속에서, 피흘리며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인간적 생각과 불신, 온갖 의문들과 한계들까지, 모두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믿음은 그 모든 것을 진실로 마음깊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려고 할 때, 또 그 실천 속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삶을 사는 것이고, 바로 거기에서부터 예수님이 선포하신 세상의 구원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을 향한 깊은 애정의 지극한 표현이면서, 매일의 삶 속에서 힘들어하고 걸려 넘어져 울기도 하는 우리를 향한, 지극한 사랑의 잔치에로의 초대입니다.
오늘 함께한 교우분들도 그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고 함께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그 사랑 안에서, 이 세상을 기꺼이 이겨나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또 한번의 새로운 출발이 되도록 다짐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