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6주일
2. 14 한강성당 주임
+ 찬미예수님 (나병환자의 치유이야기)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중, 살아가는 중에 겪게되는 대표적인 고통으로 질병이 있습니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건강과 장수에 대한 바램은 더욱 커졌지만, 우리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근절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재‘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병은 우리 삶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고통의 한 부분이지만, 많은 이들은 질병을 통한 고통의 이면에 있는 긍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질병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열쇠’로 비유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일생동안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다양하고도 치열한 노력을 하지만, 질병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더 깊고 심오한 문제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질병을 여행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한 번도 병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마치 여행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인생과 세상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질병으로 인한 고통, 죽음의 위협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생의 극히 일부분만을 경험한 것과 같다고 본 것입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인 헬렌 켈러여사는 태어나서 질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은 채 한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많은 시간이 흘러 말하기를 “저는 한때 신발이 없다는 이유로 울었습니다. 그러나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저에게 신발이 없었다는 이유로 울 수가 없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의 극복으로도 가득하다.”고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본질을 말합니다.
살면서,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병은 죽을병이었습니다.
차라리 죽는것이 나을 만큼 인간의 인격과 삶을 파괴해버리는 ‘나병’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과 또 세상을 격리시키고, 몸의 외형을 심각하게 훼손시켜 더 이상 세상과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존재로 살던 이들에게, 치유자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켜 줄수 있는 진정한 구세주가 나타나신 것입니다.
나병환자에게는 같은 병을 격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없는 절박함이 있었고, 저분이라면 나를 고쳐주실 수 있으리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우리들에게서 떠나라고 욕을 하지만, 세상의 구원자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앞에 나와 기꺼이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하느님의 계명이 사랑임을 이미 알고있던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은 가장 절박함에 처해 있는 이웃을 하느님의 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래서 부정하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도 ‘우리 믿음의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이라고 알고 있고 또 말을 하면서도, 그 계명을 거스르거나 외면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계명이 ‘사랑’이라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된다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그 사랑이 당장 필요한 이를 향해 가장 우선적이고 절대적으로, 지금 실행되어야만 합니다.
인간의 질병은 우리의 삶과 결코 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좋든 싫든 겪어 내야 하는 과정입니다. 오늘 너의 고통은 너만의 것일 수 없고, 앞으로 내가 겪어야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우리가 바라볼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언제, 누구에게 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한 주간이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