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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자 묵상 - 20210117

작성일  |2021.01.18 조회수  |211

한강성당 교우들과 함께하는 묵상 (3)


차마 믿겨지지 않는 우리들 삶의 처참한 자락들을 쉼없이 듣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인간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도 헤아려 봅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다하지 못한 결과들을 보면서, 한없는 부끄러움과 인간의 욕심, 불완전함을 절절하게 느껴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1. 17  주임신부 최정진 베네딕도



3. 코로나 시대의 하느님의 표징과 손길은 어디에서 찾을까?


1) 인내와 기다림


► 이스라엘은  부흥기를 지나,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 오래지 않아 각각 멸망했습니다. 

북부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아모스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먹고 사는 것에만 매여있는 것을 보고, 하느님과 인간이 맺은 계약을 상기시킵니다. “내 마음 안에 항상 너희가 있고, 너희 마음 안에 내가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않던, 이스라엘이, 그리고 얼마후 유다마저도 같은 전철을 밟고 맙니다.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이스라엘의 유다인은 자신의 잘못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 모든 불행스런 사건이 자신들의 행위에 그 탓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양떼가 굶주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들의 배를 불릴 생각만 합니다.


역설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은 때로는 목숨까지 잃기도 하지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그 모든 고통을 가슴에 묻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깊은 반성과 함께, 잃어버린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되찾기 위한 길고도 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 그런데 불행히도, 그들은 2천년 전, 바로 자신들 곁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오랜 반성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느님께로의 전환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눈앞에 닥친 정치적, 경제적 시련들을 더 크게 받아들였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영웅 메시아만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인내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한 인내이고, 기다림인지를 되묻게 됩니다.

세상의 끝없이 이어지는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유대인들의 실패를 또 반복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2) 표징으로서의 ‘코로나’와 예수님의 방법론


► “코로나가 하느님의 징벌일까요?” 이 사태는 인류가 문명의 발전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려 온 것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인류가 세상의 고통이나, 서로 나누어야 할 책임은 마다한 채, 이익을 얻는데만 급급한 결과임에는 분명합니다.


강대국은 강대국대로 권력이 있는 사람은 그 권력에 취해서, 또 많이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을 지키거나 더 불리기 위해서 애를 쓴다면, 그 결과는 끝내 모든 사람이 고통에 처하게 될 것이고, 세상은 불행스런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이미 지구 한편에서는 수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병들고,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서로 결코 가깝다고 할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더라도, 이제 세상은 ‘하나’라는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현실을 ‘코로나 사태’는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 극복의 시작은 어떤 이유로든,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외면했던 우리 믿음의 출발점에서 부터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나고 싶다면, 그 출발은 당연히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사셨던 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세주로서의 삶은 세례로부터 시작된 공생활 동안 보여주셨던 바로 그 모습, 그 삶인 것입니다.


► 예수님은 당신 앞에 다가온 이들 중, 특히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의지할 데 없는 아픈이들과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꺼이, 당신의 손을 내밀어 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행복을 바라시지만, 그 행복은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먼저 베풀어주신 사랑과 한없는 자비, 그리고 정의에 기초한 것이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욥은 모든 것을 잃고 나서, 이전에 자신이 누리던 그 모든 것을 주셨던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며 찬미를 드립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세상이 겪고 있는 이 고통들은 하느님의 징벌이 아닌, 하느님이 주신 그 사랑을 회복하여, 다시 세상을 일으키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사랑의 의미를 마음으로 깊이 느끼며, 새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왕에 있었던 기아와 질병, 전쟁의 소용돌이에 더해, 더 큰 고통이 세상을 덮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시 우리가 믿었던 바,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기로 다짐했던 그 출발점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계시는 주님의 모습과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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