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이 책의 이야기는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닷가의 작은 놀이공원의 정비사인 주인공 에디는 여든 세 번째 맞는 그의 생일날에 뜻하지 않은 놀이기구 사고로 어린 소녀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작가는 에디의 죽음을 통하여 독자들을 죽음의 세계로 끌고 간다.
에디는 죽은 후, 첫 번째 사람을 만나 이런 말을 듣는다. “천국은 바로 지상에서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 있는 거랍니다. 우연한 행위란 없어요. 우린 모두가 연결되어 있으니까…”
난 ‘옷깃만 스쳐도 인연’ 이라는 불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많은 일들, 생각 없이 무심히 내 뱉은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을까…
작가는 천국의 첫 번째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연결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에디는 두 번째 사람을 만나 ‘죽음과 희생’ 의 정의를 얻게 된다.
“죽은 것? 그게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네. 우린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야. 사람들은 희생은 삶의 일부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희생을 하고 나서 분노하며 잃은 것에 대한 연민을 하게 되는 거라네.” 나는 이 대목에서 작가에게서 ‘죽음과 희생’의 미학 강의를 듣고 있는 듯 했다. 에디는 훨씬 편해진 마음으로 세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노부인 이었다. 노부인은 조용히 말을 꺼낸다.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독이에요. 그것은 안에서 당신을 잡아 먹지요. 분노는 굽은 칼 같아서 휘두르면 자신이 다쳐요”. 에디는 어린 시절 무관심과 폭력으로 점철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점점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번져 나왔다. 작가는 여기에서 ‘화해와 용서’를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화해와 용서’ 그 얼마나 넉넉하고 아름다운 언어 인가!
에디는 사랑했던 아내, 뇌종양으로 고생하다 젊은 나이에 먼저 천국에 와 있는 아내 마거릿을 네 번째로 만난다. 아내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에디에게 아름다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에디는 아내와 같이 살 때 사랑하였으나 무관심하게 대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다시금 사랑이 차 오름을 느낀다.
난 늘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을 소홀히 하고 있진 않은가… 혹 나보다 못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진 않았는가… 길을 가다 불쌍한 사람을 못 본채 지나 치진 않았나… 많이 부끄러워 진다.
에디는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사람을 만난다. 어린 소녀가 검고 뭉개진 얼굴로 에디를 보고 있다. 에디의 젊은 시절 필리핀 전투 중에 후퇴하면서 산 속에 있는 헌 오두막을 폭파한 적이 있었는데 불 길이 치 솟는 속에서 언뜻 사람의 실루엣을 본 것 같았다. 전쟁이 끝나고 불구가 된 뒤에도 몸의 상처 보다는 마음의 상처로 밤마다 악몽을 꾸곤 했다. 혹시 그 오두막에 누군가 있진 않았나 하는… 근데 지금 눈 앞에 서 있는 소녀가 바로 그 오두막에서 불타 죽은 ‘탈라’ 라는 이름의 소녀라니… 에디는 오열하며 무릎을 꿇고 소녀에게 빌었다. “용서해 주렴, 용서해 주렴. 오 하느님!” 오열하는 에디에게 소녀는 돌맹이를 내밀며 검게 타고 뭉그러진 자신을 씻어 달라고 부탁하며 에디가 평생 안고 온 상처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탈라의 뭉그러진 살 뒤로 뽀얀 새 살이 돋아 나오는 것을 보며 에디의 오랜 상처는 아물고 몸은 새털같이 가벼워 진다. 작가는 처음부터 삶과 죽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인연, 희생, 용서, 화해를 환상적인 구도로 나열하며 독자를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평화로 끌어 들였다. 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드라마틱한 5막 6장의 연극을 본 듯 모든 장면이 머리 속으로 가슴으로 차 오른다. 마지막 대림절을 보내며 나에게도 오실 아기 예수님을 맞아 진정한 평화를 누리고 싶어진다.
추서: 건성 건성 살아가다가도 때론 멈춰 서서 삶의 궤도 수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신부님, 감사합니다.
변용금(Teresa)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