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후에는 무엇이 오는가?'를 읽고
오상룡바오로
'죽음'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공포, 무서움, 차가움, 외로움, 슬픔, 눈물 등 부정적인 의미만을 준다.
죽음을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 혼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죽음을 좀더 일반화해서 살펴볼 경우에도, 내가 느끼는 것과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죽음'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한번은 맞이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각자의 나이나 건강상태에 따라 죽음의 의미나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 죽음은 먼 시점에 다가올 일이며 지금 당장 생각하기 싫은 단어일 것이다. 특히 바쁜 일상가운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젊은이 사람들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는 1년에 한두번정도 잠깐 생각해볼까 말까하는 관심밖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노인들이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죽음은 조만간에 당신들에게 들어달칠 일이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할 일인 것이다. 즉, 자기가 뭍힐곳, 수의, 영정사진 등을 마련하고, 유언장을 쓰고, 그리고 저 세상으로 떠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나씩 해나갈 것이다.
아직 한창 활동적으로 일하는 사십대 중반인 나에게 '죽음후에는 무엇이 오는가'라는 책은 다른 책보다 주제도 썩 내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책서술방식도 죽음을 심리학, 철학, 신학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눈에 확 들어오는 글귀를 발견 하였다.
성베네딕토의 말씀이었다. 그분은 오히려 죽음을 무섭게 생각하기 보다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라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셨다. 성베네딕토는 수도승들에게 날마다 죽음을 생각하라고 권고하였는데, 이는 죽음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기보다는 삶이 무엇인지를 항상 새롭게 생각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즉,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의 흔적을 남기고길 바라는가?, 삶의 맛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 살고 숨쉬고 말하며 듣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등을 생각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나는 성베베딕토의 말씀에 공감이 간다.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이가고, 의미있는 삶의 흔적을 남긴다면, 과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맞이하는 죽음은 무섭고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죽음이 주변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고 좋은 기억을 것이다.
일년전에 선종하신 김수환추기경님이 생각난다. 추기경님도 살아계시는 동안 내내 성베네딕토의 말씀대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고 행동하였으며 하느님을 기쁜 얼굴로 뵙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나도 성베네딕토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나의 삶을 반추해보고,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깨닫고 또 깨달아보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봉사를 실천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이렇게 살다보면, 나는 더 이상 죽음이 무섭고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죽음 이후에 하느님을 기쁜 얼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