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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화해 이야기'를 읽고

작성자  |라이문도 작성일  |2009.12.11 조회수  |734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마태 21:12-13)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마르 11:15-17)

 

언젠가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모 수녀원의 수녀님들께서 어떤 성당에서 기금마련을 위해 밑반찬을 파시고 계셨는데 어느 한 자매님이 지나가시면서 "너무 비싸요."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시고는 화가 나셔서 "그냥 가세요."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신 적이 있다. 분명 교회에서 상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행해지는 것은 서로가 자신의 이득을 창출하기 위해 물건을 사고파는 상거래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와 같은 기금마련을 위한 정성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녀님과 자매님들이 정성껏 준비한 사랑의 결정체들을 세속의 물질로 여기며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가져간 것은 아닐까? 성당에 나오면서, "주님, 저희 아이 대건 유치원에 이번에 꼭 입학하게 해주세요.""하느님, 갑자기 몸이 아프신 부친의 건강을 위해 기도드리오니, 하루 빨리 쾌차하게 해주세요."처럼 주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 모이지는 않았나? 흥정과 거래 그리고 이해득실은 모두 주님을 떠나 자신의 삶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모두 자기 자신만의 이해득실을 챙기려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은총에 대한 감사와 속죄를 위해 교회에 모인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미사에 참석하면서 얼마나 많은 날을 내 자신만을 위해 기도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 언급되어 있는 '용서'조차도, 내 입장에서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용서는 타인에게 베푸는 기부의 실천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사실 용서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또한 상대방의 부족함과 고통(아픔)을 함께 하고자하는 사랑의 나눔이다. 그런데 '봉사'와 '용서' 그리고 '화해'와 같은 나눔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나 '자비'와 동일시하는 잘못을 자주 범하기도 하였다.

이번 '독서클럽9313'활동 중에 내가 읽은 책 3권 중에 한 권 제목(번역서)에 '화해'라는 단어가 있었다. 번역자가 임의대로 사용한 단어이지만, 이 화해(和解)라는 단어의 종교적 의미는, 대립관계를 풀고 유대와 평화의 관계를 맺는 행위와 이로 인해 일치를 이루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죄에 의해서 창조주인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되었지만, 하느님은 이 분리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화해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로마서 5:10)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코린토2서 5:15-21)

 

구약에서 제의(祭儀), 율법, 기도 등은 모두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수단이라고 하며,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화해와 속죄, 그리고 새 생명을 얻게 해주셨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느님과의 전격적인 화해를 이루게 된 것이다.

'화해의 시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오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은 것도 어떤 사연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성심수녀회 수녀인 스즈키 히데코(鈴木秀子)는 저자가 약 20년 전 스스로 '죽음체험'을 하고 이후 말기 중환자들의 간호와 내적 치유에 관여하면서 본인이 체험한 이야기를 담아 쓴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원제: 죽어가는 사람들이 전해주고 싶은 말 死にゆく者からの言葉, 1993)의 후속편으로 이 책 《가장 아름다운 화해 이야기》(원제: 죽은 이와 살아있는 이의 화해하는 시간 死者と生者の仲良し時間, 1997)를 썼다. 이 책에는 전 편의 임종을 맞는 사람들과 이들을 지켜보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는 후속편을 먼저 읽기는 하였지만, 그 전 편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큰 깨우침과 위안을 얻은 것일까 하는 의구심에 책 구입을 신청하였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일본어 원서와 함께 번역서를 신청하는 바람에 열흘이 지난 11일인 오늘까지도 받아보지 못하고 있고, 이렇듯 어리석음이 누적되다보면 제 시간에 독후감을 완성하지 못할까하는 불안과 초조감에 서둘러 이렇게 나의 심득을 적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울면서 태어나고, 웃으면서 자신의 사명이 다하는 그 순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승에서 하직을 고한다. 반대로 주변 사람들은 누군가의 출생에 활짝 웃으며 탄생을 축복하지만 죽음에는 가톨릭 신자들조차 눈물지으며 가슴 아파하고 그 슬픔이 지나쳐 몸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죽음을 축복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서상 어려운 일이다. 현실세계에서의 헤어짐도 혹시나 하는 만남에 대한 기대가 있기에 아쉬움 속에서도 이별을 고하지만, 이생에서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의 순간에는 아무도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마냥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회피하려고 한다면 언제까지나 죽음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울러 참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열고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존귀함과 함께 주님 곁으로 떠나가는 이들에게도 안락을 선사할 수 있다. 죽음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을 다했을 때 비로소 주어지는 은총이다. 하물며 더 나은 세상, 바로 주님의 곁으로 가는 그 여정의 시작에서 바짓단을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독단적 행동을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만약 떠나는 이에게 할 말이 있거나, 용서를 구할 일이 있다면 사전에 미리미리 해결해야 한다. 인간은 분명 언젠가는 주님 곁으로 가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생에서의 사명을 다하고 떠나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항상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미안하거나 혹은 고마운 마음을 언젠가 기회가 오면 전해야지 하는 미루는 태도보다는 이 경우만큼은 '빨리빨리'의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죽음을 앞둔 이들은 한평생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를 하루라도 빨리 치유받기 원하며, 살아 있는 이들과 화해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화해의 시간'을 갖기 원하는 이유는 아직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인식시키고 아름답게 꾸며가도록 촉구하기 위함이다.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보다 진지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되고,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화해 이야기》에는 어려서 생을 달리한 두 명의 소년이 등장한다. 한 명은 소아암(백혈병)에 걸려 여섯 살에 숨진 '켄'이라는 아이이고, 또 한 명은 다섯 살 생일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타다가 밖에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강물에 빠져 숨진 '케이타'라는 아이이다. 지금 네 살과 두 살 아들 녀석을 키우고 있고,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마냥 귀엽고 예뻐하는 나로서는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야기에 코끝이 시큰거렸다면, 이 두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두 물줄기를 주체할 수 없었다. 죽음은 분명 살아있는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준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한 범죄들과 멀지않은 이웃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곳 아이들의 기아문제 등등,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감성적으로 내면에서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더러는

沃土에 떨어지는 작을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 김현승의 〈눈물〉 -

 

김현승 시인은 삶의 한 순간 그리고 일부분이라도 쓸모 있는 깨끗한 생명을 만들고자 애쓰는 우리 인간에게 아무리 찾아봐도 깨끗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눈물을 주시어 생애 가장 값어치 있는 생명으로 삼게 하셨다고 하였다. 화해를 함에 있어 눈물의 정화가 있다면 더욱 진솔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화해는 상대가 내민 손을 흔쾌히 잡아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면 더욱 값진 화해의 순간이 된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어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은 없는지 화해를 청해야 하는 사람은 없는지 찾아보아야 할 것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머리 속에 각인된 질문을 여기에 적어 본다.

아이가 자신의 곁에서 단지 5~6년만 함께 생활하고 불의의 사고로 주님 곁으로 떠나갔다면, 그 함께한 순간 아이와 함께 하도록 내 곁에 보내주신 주님의 은총만을 생각하며, 초롱초롱 눈망울을 하고 해맑게 웃음 짓는 아이의 모습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울 수 있는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될 수 있을까?

'대건 유치원'을 '아멘 유치원'이라고 하면서 뒤편 놀이터에서 뛰어 놀면서, 형 누나들처럼 이곳에서 뛰어놀면서 '아멘'하고 식사 전 기도를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던 아이가 12월 10일 입학추첨에 떨어진 것이 자신이 추첨을 할 때 뽑기를 잘못 뽑은 탓이라고 자책하면서 울먹이는 아내는 언제쯤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관리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첫번째의 경우 과연 어떠하셨을까요. 사랑하는 친구 나자로의 죽음을 아시고 눈물지으셨던 그분이라면 그저 지우개로 지우실 수 있으셨을까요....관리자로서가 아니라 흰구름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깊은 통찰과 던져주신 묵상.. 감사드립니다.

    2009-12-12 16:00:4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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