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순례자’를 읽고
오상룡바오로
“이름없는 순례자”를 읽으면서, 이 책속에 나오는 순례자가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하는 것이 마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 카톨릭 성도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순례자는 순례를 시작할 때부터 예루살렘에 도착할 때까지 배고픔, 피곤함 그리고 마음의 번뇌를 가지고 수천리, 수만리 길을 걸었을 것이다. 우리도 현대문명사회에서 소외, 고독,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순례자만큼 고단한 삶을 수십년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순례가 고행길이고, 현대인의 삶 또한 힘겹고 고단한 삶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순례와 현대인의 삶은 힘든 길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순례자는 힘든 순례길에서 자나깨나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 순례자가 드린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매우 단순한 기도문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기도가 순레자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되었으며, 이 기도를 통해 순례길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던 것이다. 이 기도는 순례가 끝날때까지 계속되었고, 아마도 순례자가 하느님에게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욕망, 외로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매일매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순례자의 배고픔, 피곤함, 번뇌와는 다른 종류지만 그 힘겨운 정도는 순례자가 겪은 어려움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라도 본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욕망, 외로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은 순례자가 순례도중에 겪은 고단함과 아주 비슷하다고 본다. 그럼 과연 현대를 사는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고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
나는 순례자의 좋은 습관에서 그 해답을 발견하였는데, 그 해답은 '기도'이다. 즉, 현대를 사는 우리도 순례자자처럼 끊임없이 기도를 하면서 위안을 받고 기도에 의지하면서 고달픈 오늘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신앙인이든지 아니든지 간절한 바램이 있거나 곤경에 처하게되면 기도를 한다. 그러나 바램이 없거나 곤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기도를 하지않는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신앙인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러나 기도는 하느님과의 의사소통이며,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한다. 특히 카톨릭 성도인 우리가 하느님과의 의사소통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우리의 처지가 좀 나아졌다고 기도를 하지 않는다거나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순례자는 순례 도중에 따뜻한 잠자리와 먹거리를 제공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 순례자는 책을 보면서 기도에 대해 공부하고 훌륭한 선생을 찾아가서 좋은 기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즉, 평생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고자 하는 우리들로서는 순례자처럼 기도에 대해 공부하고, 깨어있는 동안에는 항상 기도하는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복잡하고 힘든 삶속에서 우리들이 열심히 기도할 경우, 하느님과의 의사소통은 계속되며 이로인해 우리의 고단한 삶은 기쁨, 행복 그리고 평화의 삶으로 바뀔것이다. .
나도 지난 여름부터 매일 묵주기도 등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기도는 복잡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커다란 위안과 힘이 되주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기도를 아침시간뿐 만 아니라 하루 온종일 시간이 날때마다 드리도록 해야겠다. 순례자가 깨어있는 매순간순간마다 기도를 드렸는데, 이는 참 좋은 기도습관이라고 여겨진다. 나도 순례자처럼 깨어있는 동안에 끊임없이 기도하는 방식으로 기도습관을 바꾸어 봐야겠다. 그리고 이 습관을 오랫토록 간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