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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질문

작성자  |노아가다 작성일  |2026.03.12 조회수  |11

인공지능 시대, 질문 노강(시인)



일반 가정집 대부분의 아침이면 로봇청소기가 집 안을 돈다.
밤사이 쌓인 그릇은 식기세척기가 정리해 두고, 세탁기와 건조기는 우리가 잠든 동안에도 묵묵히 돌아간다.
버튼 하나로 실내 온도는 사계절 내내 쾌적하게 유지되고,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두드리면 필요한 물건이 문 앞에 도착한다.
예전 같으면 반나절은 족히 걸렸을 일들이 이제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분명 이전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시간은 절약되었다는데 왜 우리는 늘 바쁜가. 몸은 덜 쓰는데 왜 더 쉽게 지치는가, 왜 마음의 병이 깊어진 현대인들이 늘어나는가, 우울증으로 오는 생명의 상실은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는 어느새 묻지 않은 채 길들여지고 있다. 속도에 길들여지고,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알고리즘의 추천에 안심한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검색 기록과 소비 패턴을 분석해 취향을 예측하고, 감정을 추정하며, 다음 선택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 순간, 선택의 주도권이 조금씩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체감하지 못한다. 최근 읽은 "편안함의 습격"에서 마이클 이스터는 인간이 본래 불편함 속에서 단련되어온 존재라고 말한다.
인류는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위험,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맞서며 살아남았다. 그런 도전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인간을 강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적당한 긴장과 부담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가능한 한 모든 불편을 제거하려 한다.
기다림은 최소화되고, 이동은 단축되며, 노동은 자동화된다. 기억은 검색창에 맡기고, 계산은 기계에 맡긴다.
이스터는 이를 ‘편안함의 과잉’이라 부른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불편과 긴장이 사라질 때, 오히려 무기력과 불안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일부러 오지로 떠나 자연 속에서 사냥과 야영을 경험한다.
전기와 인터넷이 없는 환경에서 몸을 쓰고, 날씨에 적응하며, 스스로 생존을 책임지는 경험은 그를 지치게 하기보다 오히려 생생하게 깨어 있게 했다.

 그는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한 편안함이 아니라 ‘의도된 불편함’이라고. 조금 더 걷는 수고,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노력, 불확실성을 견디는 시간. 그러한 경험이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삶의 감각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오래 전에 읽은 역사학자 아놀드 J. 토인비가 떠오른다.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제시한 ‘도전과 응전’의 관점은 오늘의 상황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토인비에 따르면 문명은 안락함 속에서 번성하지 않는다. 외부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성장하거나 쇠퇴한다.
지나치게 혹독한 도전은 문명을 파괴하지만, 도전이 전혀 없는 안락함 역시 창조성을 마르게 한다. 적절한 긴장과 위기가 있을 때, 인간은 새로운 해답을 모색하며 한 단계 도약한다.

지금 우리의 도전은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그것은 ‘과도한 편안함’일지도 모른다.
기술이 많은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시대에 우리는 점점 판단의 수고를 덜어내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고, 책임지는 경험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기계가 판단한 결과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자동화로 일자리가 사라질 때 그 상실의 무게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 관계가 데이터로 정리되고 감정이 수치로 환산될 때,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머무는가.
인공지능은 계산을 정교하게 수행하지만, 연민과 양심까지 계산할 수 있을까.
통계는 평균을 설명하지만, 한 사람의 사연과 눈물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토인비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도전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응전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모든 것을 기계에 맡기며 더 깊은 편안함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도구로 삼되 인간의 판단과 책임을 끝까지 붙들 것인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은 사유의 힘이다. 문학은 그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문학은 느리지만 대신 한 문장 앞에서 멈추게 하고, 한 인물의 고통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남고 싶은가.” 기술이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수록, 우리는 더 느리게 성찰해야 한다.
편리함이 극대화될수록, 우리는 의도적으로 불편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시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기술을 인정하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응전일 것이다.

완전한 편안함이 아니라,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적당한 불편함. 무조건적인 순응이 아니라, 성찰을 동반한 응전.

그 선택의 자리에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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