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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아가다 작성일  |2025.12.26 조회수  |23

모든 생명체는 생명에 관해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 노강(시인)


 최근 인명구조견이 안락사 명단에 오른 기사를 봤다. 
구조견들은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살려낸다. 붕괴된 건물 속 먼지와 쇳덩이 사이에서, 무너진 지하차도와 산사태 속에서, 그들은 인간을 위해 두려움을 견디며 뛰어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은퇴하는 순간, 그들은 ‘쓰임’을 잃는다. 사람을 살려낸 그들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조용히 처분 목록에 오른다. 
관리 비용, 사육 여건, 인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힘을 다해 우리를 구한 생명에게 우리는 무엇으로 답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문명은 침묵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정당하지 않다. 국가가 운영한 생명을 국가가 버리는 구조는 제도적 폭력이다. 구조견은 국가와 시민이 함께 책임져야 할 존재다. 

그들의 은퇴가 ‘은폐된 안락사’여서는 안 된다. 인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명구조견이 은퇴 후 국가가 보장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 

 또 실험 견인 비글의 현실은 어떤가. 비글은 유순해서, 순종해서, 인간의 손길을 잘 따르기 때문에 선택된 종이다. 
그러나 그 온순함이 고통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실험 견들은 독성 실험, 약물 반응 실험, 장기 손상 실험 등 온갖 고통을 견딘다.
 일상적인 스트레스, 격리, 수술 후 방치, 반복적 시험.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학은 이미 이들을 대체할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인체 세포 기반의 독성 실험 시스템, AI 기반 약물 반응 예측 모델 오가노이드(미니 장기) 기술, 동물 없는 생체반응 시뮬레이션 등

. 그러나 연구 현장은 여전히 동물을 선택한다. 가장 빠르고, 가장 싸고, 가장 항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이것은 인습, 편의, 비윤리성이다. 생명을 직접 다루면서도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는 태도는 결국 과학의 신뢰성마저 훼손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인간의 미래에 고스란히 돌려받는 악순환의 고리이다.
 

이들에 대한 인간의 폭력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잔인한 관행이 돼 버렸다. 식용을 위해 태어난 동물들의 실상은 어떠한가. 
식용을 위한 동물의 죽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고통의 최소화는 어떤 이유로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동물도 인간과 동일한 고통 신경 체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북미의 동물복지 기준은 이미 ‘고통 최소화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현장에서 그 기준은 지켜지지 않는다.

 스트레스 없는 이동, 통증 없는 도축, 충분한 공간, 공포 감소를 위한 조명·소음 조절 등 이런 기준은 사치가 아니라 문명사회의 최소한의 가치이고 도리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죽음을 요구할 때, 최소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책임도 가져야 한다.

 죽음의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방법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죽음은 고통 없이 이뤄져야 하고, 생명은 마지막 순간에도 존엄해야 한다. 

무심함은 가장 느리지만 가장 깊은 폭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물의 죽음은 곧 인간의 미래를 비추는 척도이다.
 문명은 죽음의 방식으로도 평가 된다. 생명을 살리는 제도적 개선이 곧 미래를 비추는 척도가 될 것이다. 고통을 외면하는 문명은 결국 고통을 되돌려 받는다.
 존엄을 무시한 사회는 결국 인간의 존엄도 지키지 못한다.
 같은 땅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보살핀다면 폭력도 전쟁도 사라진다고 믿고 싶다. 

 우리는 무감각해진 선의의 본능을 회복하고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절대로 권리가 아니다.

 사회가 성숙하다는 것은 인간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어떤 문명 속에 살고 있는지를 말해줄 것이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생명들의 아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사회는 선택해야 한다. 더 빠르고 편리한 문명을 향할 것인가, 아니면 더 따뜻하고 성숙한 문명을 향할 것인가. 누구나 안다. 생명을 지키는 쪽이 결국 인간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은 거창한 법이 아니라 우리의 아주 작은 의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들도 우리처럼 숨 쉬는 생명체이다. 이 땅의 주인이며 인간처럼 잠시 이 땅을 빌려 쓰는 같은 생명체이다.


첨부파일  |정말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사회인가.hwp

  • 노아가다

    교황님의 피조물 보호 말씀을 듣고 쓴 글입니다.

    2025-12-26 17: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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