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첫사랑을 하듯 몸이 달고 마음이 거기에만 가있어서 몸살을 앓았다
명도회 회원으로서 성인에 대하여 발표해야 함으로 순교성인의 자료를 찾아서 읽으면서 말이다.
바로 198년 전의 성인 성 다블뤼주교님의 전기를 읽고나서부터이다.
성인의 전기를 읽고 연관된 서적을 찾아서 읽는 재미는 생전에 없던 흥미로운 자료들과의 만남이였다
조현범의 "조선의 선교사,선교사의 조선"은 성바오로 출판에 문의하니 이런 책 처음 들어본다고 하면서
시간이 걸린다고 한 책이였다.
결론은 새로 찍어야 된다는 책이였다
발표 일주일 전 도착한 책을 밤잠을 줄여 가며 급히 읽었다.
바로 그 책이 나에게 흥미와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서간문 형식으로 된 이 책은 가족과 친지와의 주고 받은 내용은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 조선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편지는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깊은 감동의 기록이였다.
샤를 살몽 저, 정현명 역, <<성다블리주교의 생애>>, 대전카톡릭대학교출판부,
역사적 사실에서 배우는 조선천주교회의 역사와 성인의 삶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려는 한 성인의 참담한 생애이면서도 그 안에서 "기쁨"을 간직한 "준주성범"의 가르침 그대로의 삶이였다.
프랑스의 아미앵에서 1818년 태어나신 성다블뤼는 명문가의 집안으로 소문이 난 휼륭한 인품과 자선으로도 유명한 집안의 장남이다
조부께서는 아미앵시의 시장으로 일하셨고, 가뭄으로 나라가 고통받을 때는 손수 개인 재산을 처분해서 곡식을 나라에 봉헌하기도 한 휼륭한 집안이다.
3명의 자매가 수녀로 막내동생은 신부로 천주교 집안의 전통과 실천을 가진 부유한 집안의당시 26세의 한 청년이
왜 가난하고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이 척박한 조선으로 왔을까?
준주성범의 가르침대로 예수님을 닯고 실천하고자 하신, 바로 이게 그의 답일 것이다.
성다블뤼 주교님 가족은 하느님을 최우선에 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다.
파리 생 쉴피스 신학생때 벌써 먼저 1839년 헌종5년에 기해박해로 순교하신 성 앵베르주교님의 기사를 오려서 책상에 간직한 신학생 다블뤼는 교구 사제로 있으면서도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열망을 늘 깨어서 준비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평소 느껴보지 못한 흥미로운 책을 읽어 가면서 순교자들과 성다블뤼 주교님의 생애를 조금 더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어서
1845년 10월 페레올주교과 김대건신부님과 6개월의 여정끝에 라파엘호를 타고 도착한 나바위황산포도 가보고, 신리성지, 갈메못성지,새남터성지,절두산성지, 약현성당,명동성당,서소문성지등 열심히 시간을 쪼개어 다녀서 조금씩 배워 갔다.
▶ 파리 외방전교회 조선파견 선교사 명단 1831~1866( 입국하신 순서로 적어 보았습니다)
1,브뤼기에스 1792-1835 입국실패 43세 병사--" 제가 가겠습니다"로 유명한 초대조선 대목구장님
2,모방 1803-1839 1836년 입국 참수 36세 성인
3,샤스탕 1803-1839 1837년 입국 참수 36세 성인
4,앵베르 1796-1839 1837년 입국 참수 43세 성인
5,페레올 1808-1853 1845년 입국 병사 45세 과로사
6,다블뤼 1818-1866 1845년 입국 참수 48세 성인
7,메스트르 1808-1857 1852년 입국 병사 49세 과로사 10년동안 6번 시도후 입국 성영회를 만들고 고아들과 특히 어린이들의 임종에 대하여 또한 어린이들의 양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신 선교사
8,장수 1826-1854 1854년 입국 병사 28세 뇌염
9,베르뇌 1814-1866 1856년 입국 참수 52세 성인
10,프티니콜라 1828-1866 1856년 입국 참수 38세
11,프티니 1830-1866 1856년 입국 참수 36세
12,페롱 1827-1903 1827년 입국 76세 병인박해시 탈출에 성공
13,랑드레 1828-1863 1861년 입국 병사 35세 전염병
14,조안노 1832-1863 1861년 입국 병사 31세 폐병
15,리델 1830-1884 1861년 입국 54세 6대 조선대목구 주교
16,칼레이 1833-1884 1861년 입국 51세 병인박해시 탈출에 성공 동전탈출로 유명한 일화 동전을 실수로 떨어 트려서 그 동전을 주우려는 포졸들을 피해서 탈출에 성공
17,오메트르 1837-1866 1863년 입국 참수 29세 성인
18,위엥 1836-1866 1865년 입국 참수 30세 성인
19,볼리 1840-1866 1865년 입국 참수 26세 성인
20,도리 1839-1866 1865년 입국 참수 27세 성인
21,브르트니스 1838-1866 1865년 입국 참수 28세 성인 백작집안의 출신으로 성인의 유해는 가족이 모셔감.
“이들 선교사들은 프랑스를 출발하는 순간 조선 땅에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굳은 결의를 맺은 사람들이기에, 한번 떠나면 되돌아오지 못할 길을 나선 사람들이시다.
하지만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서 이름이라도 올려 본다.
21명의 순교 중에서 성인중에서 10분은 성인반열에 오르셨는데, 왜 프티니콜라신부와 프트니신부님은 순교자이시면서도 왜 성인의 반열에 안올라 가셨는지 궁금하다.
그 외 나머지 신부님들의 병사 하셨다. 과로로 향토병으로 질병으로 병사 하셨다는데
과로로 병사하신 선교사들도 당연히 성인의 반열에 오르시길 기도해야 할 것이다.
늦었지만,
그 분들도 기억하고 그 분들의 삶도 다시 재조명 해야 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