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체험한 고해성사 / 신달자 엘리사벳(시인)
1977년 11월 11일 서울 성북동성당에서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모든 것이 위급했으므로 우리는 이마에 울리는 물의 은총에 대해 온전히 믿음을 약속했다. 길이 있다는 것도 은총이었다. 길에 대한 갈등 없이 가기만 하면 되는 생의 축복 또한 큰 은총이었다.
가야 하는 곳이 정해진 길,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젖어왔던 시기였다. 열심히 가려는 은총이 왔다. 그 은총에 대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의심이 없었다. 어디를 갈까 어떻게 갈까 누구와 갈까 어디까지 갈까 이 의문들을 일시에 불식시키는 길이었다는 것은 내 인생에 안정감 있는 축복이었던 것이다.
주님의 길로, 믿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천국까지 가야 한다는 이 한 가지 믿음은 어떤 갈등도 계산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안다. 숨쉬는 것조차도 은총이었던, 너무나 절실하게 찾아왔던 생의 선물에 나는 감읍하였다.
그런데 고해성사는 지금도 늘 우물쭈물한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축복의 은총을 잘 알면서 말이다. 나는 1977년 성탄준비로 첫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다. 떨렸다. 전날 잠을 이룰 수조차 없었다. 어떤 태도로 어떤 목소리로 어떤 말들을 해야 하나 나는 떨렸고 울컥하기도 했다. 드디어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고요히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성호를 그었고 이어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이라는 말을 너무나 어렵게 발끝이 쥐가 날 정도로 완전히 얼어서 발발 떨면서 겨우겨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겨드랑이에 땀 흐르는 것도 몰랐다. 코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몰랐다.
진심이란 원래 뜨겁고 진땀 나는 게 아닌가. 내 생의 가장 처음으로 진심을 입으로 발음하는 것, 그것은 황홀이면서 고문이면서 은총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그렇게 얼어 우왕좌왕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듯 사람을 바짝 엎드리게 하는 것일까.
입안이 얼었는지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성탄 때라 고해소 앞에는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신부님이 내가 벌벌 떤 고해성사에 비해 너무 간단하게 끝을 내셨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나와서 엉엉 울었다. 기억건대 그 울음이 은총 아니었을까.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으리라. 벙어리가 막 입을 열려는 그런 긴장감, 하느님이 이리 오라! 하고 그 앞으로 가는 그런 긴장감으로 온몸이 얼어버린 그런 순간에 너무나 간단히 끝난 보속이 허탈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긴장감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나의 고해성사는 언제나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다시 태어나는 현실감을 절대로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영광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고해성사는 내 영혼이 하느님과 대화하는 무릇 거대한 축복이라는 점을 나는 잊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기적은 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