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희(수산나), 송한근(안드레아), 이영자(세레나), 임영희(헬레나), 최현주(베로니카), 황경숙(율리아)(가나다순) 형제 자매님께서 감상문을 한강성당 신자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제출하셨습니다.
한분 한분의 글이 다 소중하여서 따로 수상작 없이 참가하신 분 전원 소감문을 주보에 게제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면관계상 무순위로 4-5주에 걸쳐 주보 7면에 게제하오니 신자분들께서는 성경쓰기의 감동을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송한근(안드레아) - 9구역 6반
어느 날 나에게 다가온 성경 이어쓰기가 처음에는 매우 어색하고 왜 성경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집안의 평화를 위한 행사라고 하면서 집사람이 조금이라도 참여를 부탁하여 우리 가정에 행복을 위하여 처음에는 성경 이어쓰기에 생색내기로 조금씩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성경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시간이 없어서 많은 참여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나 말고도 우리 가족이 참여하면 기간 내에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성경 이어쓰기에 등한시 하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환경의 변화가 있어 시간적인 여유를 만끽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항상 집안 책상위에 펼쳐져 있는 성경책과 성경 노트를 보고 나도 한 번 적극적으로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펜을 들고 성경이어쓰기 노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한 줄 한 줄 쓰다 보니 한 구절 한 구절이 새롭게 마음에 다가오는 성경구절에 푹 빠져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성경의 내용도 음미 하면서 적극적으로 한 구절 한 구절 써 내려 가다보니 어느덧 성경의 마지막 부분까지 왔네요.
우리 집안의 평화를 위하여 시작한 성경 이어쓰기가 어느덧 목표를 달성 하였네요. 그동안 성경 이어쓰기에 주축인 집사람과 우리 딸들도 성경 이어쓰기를 하면서 마음의 양식을 가득 담아 있으리라고 봅니다. 성경을 알 수 있는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박옥희(수산나) - 4구역 2반
신약성경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전부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딸과 함께 썼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만을 떼어 놓으면 그 뜻을 잘 모르지만 성경에는 그 말씀을 하시게 된 상황이 있습니다.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에서 ‘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었습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포도밭 임자가 소출을 받으러 보낸 종들을 소작인들이 매질하고 죽였습니다. 소작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고 그 돌은 유대인들이 배척하고 죽인 예수님, 즉 하느님 나라이지요. 하느님 나라는 다른 민족들에게 전파 됩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다른 민족들의 교회의 초석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 아닌 우리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신 것일까?”하는 의문 : 바오로사도는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주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성경 곳곳에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쓰여 있습니다. 의문에 대한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우면 지옥불도 면할 수도 있지요. 나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부자처럼 죽은 후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있을 때만 산 사람들과 연옥 영혼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 매 단 끝마다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하는 ‘구원의 기도’를 바침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의 빚은 지고 있지요. 살았을 때 자신과 모두를, 연옥영혼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할 수 있지요. 야고보서에서 같은 혀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들을 저주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지요.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거기에 바른 가르침이 있으니까요. 성경을 읽고 기도, 믿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