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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이수철 신부

작성자  |/ Nittany 작성일  |2013.03.20 조회수  |1466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이수철 신부 (프린치스코 성요셉수도원 원장)

- 2013.3.17 사순 제5주일                                  
- 이사43,16-21 필리3,8-14 요한8,1-11                                                  

오늘 강론 주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입니다.
21년 전 본원에서의 종신서원식 때 한 강론 제목이요
그동안 수차례 이 제목으로 강론을 했는데 여전히 오늘날도 중요한 물음입니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얼마 전 어느 분과의 대화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친지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분입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삶이 참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살고 싶은 의욕도 없습니다.
자꾸 무기력해집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생각하면 불안하구요.”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직결됩니다.
저는 지체 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하느님 때문에 삽니다. 하느님이 우리 삶의 의미입니다.
하느님이 없으면 삶은 의미도 없어지고 살 의욕도 사라져 무기력해집니다.
제 경우는 그렇습니다.”

얼마 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유 시민 씨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 제목과 제 강론 제목을 비교한 어느 분의 통찰에 공감했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비슷한 것 같으나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는 겸손히 주님께 답을 청하는 물음처럼 느껴지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자기에게 묻고 자기에게서 답을 찾는,
마치 하느님이 빠져 버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때로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 물어야 할 질문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입니다.
오늘 사순 제5주일, 주님은 고맙게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첫째,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답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궁극적 의미입니다.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중심을 잃어 방황이요 혼란입니다.
주님 아닌 곳에서 의미를 찾기에 결국은 환멸이요 허무입니다.
주님 없이 의미 충만한 삶은 불가능합니다.
태양 빛이 온 누리를 환히 비출 때 각자의 모양과 윤곽이 뚜렷이 들어나듯
하느님의 빛이 우리 내면을 비출 때 삶의 의미는 선명히 들어납니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중심을 잡았다는 것이요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이며 잃어버린 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자비하신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비하신 하느님을 비춰주는 거울이자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역시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비춰주는 시간이자 동시에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시간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자비로운 주님의 지혜 가득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침묵 중에 조용히 땅에 무엇인가 쓰시며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에 자신을 비춰보며 모두를 살리는 지혜를 청했을 것입니다.
이 지혜로운 주님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순간,
자신의 죄스런 모습을 발견한 이들이 나이 많은 이부터 시작하여
하나씩하나씩 다 떠났다 합니다.

주님의 얼굴에 자기를 비춰보고 회개하여 자기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몰라 판단이요 교만이지 진정 죄인으로서 자기의 모습을 알면 알수록
판단은 사라지고 자비로워질 수뿐이 없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습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할 자가 아무도 없느냐?”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자비로운 주님의 거울에 환히 반사되는
여인의 깨끗해진 영혼의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본래의 자기를 찾아 구원 받은 여인입니다.

둘째,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될 때 저절로 이탈이요 집착에서의 해방이요 자유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중심을 잃어 자기를 잃고
세상 것들에 집착하여 부자유한 삶을 살고 있는지요.
바오로의 자유의 비결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나는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세상 쓰레기더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아닌지요.
그리스도의 중심을 잃어버리면 온갖 생각의 쓰레기, 분심의 쓰레기,
근심걱정의 쓰레기, 불안과 두려움의 쓰레기 등이 달라붙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의 중심을 놓쳐 버리면 집착으로 인해 밖에만이 아닌
우리 안에도 온갖 쓰레기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 마음이 온통 쓰레기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바빌론 유배 중인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해 예전의 부정적이 생각들을 말끔히 떨쳐버리라고 촉구하십니다.

“예전의 일들을 생각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그러나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참 좋은 방법을 소개합니다.
바로 내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하는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강조하다 시피 각자 고유한 삶이 유일무이한
소중한 성경책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거리를 두고 하느님 은총의 빛 안에서
내 과거의 삶을 읽는 것입니다. 좋은 추억만이 아닌 아픈 추억도 많기 때문입니다.
내 과거의 아픈 상처들을 묻어 둘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읽으며 해석해 갈 때 저절로 치유되는 과거의 상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과거의 삶을 치유해주시는 것입니다.
하여 내 과거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고
저절로 집착에서 벗어나 내적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사실 상처받은 과거의 치유에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물론 내 삶의 성경독서에 필히 전제되는 것이
신구약 성경의 충실한 레시오 디비나입니다.

셋째, 날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믿는 이들에겐 매일이 새 하늘 새 땅입니다.
하느님은 회개한 이들의 과거는 묻지 않습니다.
주님은 오늘 지금 여기 새롭게 시작하는 것만 보십니다.
사실 우리가 확실히 살 수 있는 것도 오늘 지금 여기의 현재뿐입니다.
이미 우리 손을 떠난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길을 내리라.…
내가 선택한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는 샘을 내고 사막에는 강을 내기 때문이다.”

주님은 새롭게 시작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광야에 길을 내시고 샘을 내어주시고,
우리 삶의 사막에 강을 내어 풍요로운 삶을 가꿔주십니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 꿈과 희망, 비전의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꿈이 희망이 우리를 늘 새롭게 시작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늘 하느님을 꿈꿨던 그리스도의 사람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뚜렷한 바오로의 삶의 목표입니다.
이런 하느님 목표를 잃어 방황이요 무기력한 삶입니다.
우리 삶의 영원한 목표이자 비전은 그리스도 예수님 이십니다.
오늘 복음의 구원 받은 여인을 향한 말씀은
새 출발을 시도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됩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자비하신 주님은 그 여인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시어
새롭게 시작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을 만나십시오. 집착에서 벗어나십시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이렇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자작시 중
마지막 연을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선물(膳物)이자 기적(奇蹟)이요 영원(永遠)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다가 하느님께 갈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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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오 디비나 [ divine reading , Lectio Divina ] :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수행. 단순하고 정감적인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맛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관상적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행위로, 인간적 활동이면서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 활동이다. ‘거룩한 독서’, ‘영적 독서’, ‘신적 독서’, ‘성독’(聖讀)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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