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면전에 서기
/ 에곤 카펠라리 주교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는 임종 직전 병실에 자신의 주치의가 들어서자 몸을 일으켜 세웠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들어서는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기 위하여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사는 이를 바로 눈치채지 못하고 간병인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여전히 서 있는 환자 앞으로 다가가 늦게 알아본 것을 사죄했다고 합니다. 서 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칸트는 "저에게 남아 있는 인간성의 정신이 아직은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하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존경을 표하기 위해 다른 사람 앞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 곧 기립하는 것은 많은 문화권의 경우 인간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의 문화권에서 이러한 표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학교와 다른 교육 환경에서 그러한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어서기, 기립하기는 다른 사람 앞에서 떳떳하게 몸을 세우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자세는 깨어 주의를 기울이고 경청하려 한다는 표시도 됩니다. 이는 특히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러합니다. 오래 전부터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만 일어선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하느님 면전에서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스도교 예배의 기본자세는 초대 교회를 제외하고는 늘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제대 앞에 서고, 신자들은 사제를 둘러서서 라틴 전례에서 말하는 대로 '주변에 서 있는 이들'circumstantes이 됩니다. 사제와 마찬가지로 이전에 신자들도 기도드릴 때 손을 높이 들고 동쪽을 향하여 섰습니다. 이러한 기도드리는 사람, 곧 오란테oranten의 자세를 우리는 카타콤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러한 자세를 베니스에 소재하는 성 마르코 대성당 안에 있는 동방에서 유래하는 부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팔을 높이 벌려 동쪽을 향하여 바라보는 자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팔을 내미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은 부활하신 주님을 상징하였습니다.
1천 년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주일과 축일 미사 때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주일은 작은 부활절, 곧 부활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면전에 서는 행위, 그리스도를 향하여 자신을 내미는 부활절 신심은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성인Benedikt von Nursia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감동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성인은 서 있는 채로 임종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수도원 형제들이 그분을 부축하였습니다. 바티칸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그림이 들어 있는 필사본에서 이 장면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 나오듯이, 신랑을 기다리고 맞이하러 나간 현명한 처녀들의 자세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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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수사분들이 새벽기도 등 기도시간에 영광송을 바칠 때 마다 모두 일어섰다가 다시 앉는 것, 그리고 금요일의 십자가의 길 예식 또한 모든 신자들이 일어서서 바치는 것.. 위 글을 통해 그런 전례의 의미가 명확해 지는 것 같습니다. 이 귀한 글에 접할 기회를 주신 이선애 로사님이 지금 어려운 투병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부디 어려움을 극복하여 꼭 쾌유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