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 3주년에 즈음하여 / 함민복
작성자 |Parsely
작성일 |2011.12.14
조회수 |1551
지하생활 3주년에 즈음하여
- 어머니 2
/ 함민복
햇빛으로 짠 커튼을 치고 싶습니다
불을 켜야 불을 켜지 않은 방보다 어두운 방은
좁고, 나이가 들어, 어머니 등이 따뜻합니다
우러러 들리는 위층 하늘에는 정육점이 삽니다
메주처럼 조용한 어머니는 가는귀가 먹어
하늘에서 들리는 삽겹살 써는 소리는 못 먹고
갈비 자르는 소리만 먹습니다
어머니 귀가 통이 커졌습니다
동태 궤짝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늘에서 누군가 화장실을 다녀갔다는 대변者
펌프 돌아가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래도 저 지겹게 정들은 소리들이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숟가락입니다
동거자 어둠은 자신을 색득하게 보려고
점점 어두워지고 세상은 젖은 성냥갑인가 봅니다
평지에 살고 싶은 만큼 대가리를 날려 부딪쳐보고
살점이 뭉청 떨어지도록 머리 비벼보아도
빛은 못 벌고 골만 부러집니다
부러진 골은, 머지않아 영원히 지하생활자가 될
어머니를 3년 동안 전지훈련시켜 드렸습니다
노상, 밤이 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은
빼앗는 것처럼 나누어가져야 한다는 답안을 검산합니다
그러다 벽시계로 날이 훤하게 밝아오면
나는 또 눈부신 빛의 계단을 오릅니다
겨울 잠바와 여름 바지로 쫙 빼입은 가을 옷을 입고
발자국소리가 저벅저벅 어머니 가슴을 밟습니다
빛으로 짠 커튼을 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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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
함민복 시인의 작품 <어머니>를 읽으면 자꾸만 나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당진에 계시는 시어머니가 생각나고, 공주에 계시는 친정어머니가 아른거린다.
팔순을 넘긴 시어머니는 갑상선에 등이 굽다시피 허리가 아파 고생을 하신다.
몇 년 전 환갑을 넘기신 친정어머니 역시 당뇨병으로 외모는 팔순을 넘긴 할머니다.
옛날 그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에 고생을 안 하신 부모님이 어디 있으랴마는
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은 내가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나서야
그 소중함과 귀하심을 깨닫게 되니 내 나이 불혹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나보다.
지하 생활 3주년에 즈음하여 <어머니>라는 작품을 썼던 함민복 시인.
빛으로 짠 커텐을 치고 싶은 만큼 지하 생활의 빈곤과 가난함이 죽도록 미웠음이 느껴진다.
낮에도 불을 켜야만 불을 켜지 않은 방보다 어두운 지하의 윗층에는 정육점이 있고,
생선가게가 있어 동태 궤짝을 내려치는 소리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귀마저 어두운 <어머니> 때문에 우울하다.
그 얼마나 서럽고 쓸쓸했겠는가?
자신의 생애를 아버지의 내세라고 이해하는 우울씨의 詩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야유와 가난한 가족에 대한 애증은 자신에 대한 자학으로 다가온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근원은 가난이다.
어머니의 과거는 언제나 가난과 결핍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했으며
어머니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 그의 시 속에서는 야유와 자학의 분위기가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생명에 대한 거대한 연민이기도 하지만,
섣달 그믐날 파르라니 떨고 있는 달빛과도 같은 존재의 힘없는 살쾡이였다.
가는귀가 먹어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어머니,
그저 하늘(지상)에서 들리는 거대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어머니,
그래도 그 소리를 듣고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숟가락'이라는 표현은
가난으로 대표되는 성장기와 어머니의 처절한 고독의 몸부림이 숨어 있는
자본주의 비판으로 대입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동거자 어둠>은 어머니와 자신이 함께 가난하고 병들어 있음을 시사해 준다.
'방', '어머니', '눈물', '먹다' 라는 키워드는 함민복 시인의 시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테마이며 시적 은유의 지렛대 역할을 한다.
지하 생활에서의 고립이나 고독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평지에 살고 싶은 만큼 대가리를 날려 부딪쳐>보고
<살점이 뭉청 떨어지도록> 머리를 비벼 보았을까.
그래도, 그렇게 몸부림쳐 봐도 빛은커녕 뼈골만 부러지는 불운의 주인공인 것이다.
3년 동안 어머니를 전지훈련 시켰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밤이 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은 '빼앗는'것으로써 나누어가져야 한다고...
낮인지 밤인지 모를 지하 생활의 시계는
오직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벽시계>라고 기억을 하는 시인의 세계는
얼마나 암울하며, 고립되어 있으며, 서글프고 우울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빛을 안을 수 없는 비참함에 더하여 <겨울 잠바와 여름 바지>로
쫙 빼입은 가을 옷이라 표현을 했으니 기막히고 황당한 모습에 화가 난다.
가난한 어머니의 일생을 통해 시인의 노동현장으로 가는 발자국 소리를 노래한다.
함민복은 ‘우울씨’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성(性)을 ‘주무른다’.
우울증에 걸린 패배주의자로서 우뚝 서고 싶은 시인의 갈망이 눈앞에 선하다.
나의 주변과 가족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을
솔직하고도 편안하게 전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이 아리고도 남음이 있는
고백적 체험시를 통해 <함민복 시인>다운 과거가 슬라이드화 되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