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찌르는 고통의 가시마저 감사의눈물로 치환하는 힘
작성자 |는개비
작성일 |2011.12.01
조회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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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끝없이 내 안으로 내려가는 기도와 명상의 힘이기도 했다.
지난 11월18일부터 3주에 걸쳐 중앙일보에서 '유럽 수도원 순례기'를 연재했다.
성 오틸리엔 수도원 ,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 영화 '위대한 침묵'으로 알려진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이다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비밀스런 장소였다.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오지 않는 곳.
그런 삶의 패턴을 1000년째 이어오고 있는 곳.
'수사가 생활하는 독방'... 작은 침대와 책상..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좁은 공간..방 가운데 난로..
수사들은 침묵했다...방에서도 침묵..식사때도 침묵..일 할때도 침묵..온종일 침묵이다.
그들은 그저 침묵만 하는 걸까.
아니었다.
수사들은 침묵을 통해 수없이 물음을 던졌다.
그들의 기도,그들의 묵상,그들의 독서는 모두 물음이었다.
신을 향해 그들은 물었다.
"주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렇게 묻는 저는 또 누구입니까?"
입이 침묵할 때 물음은 심장을 향한다.수사들의 침묵은 그저 엄격한 규칙이 아니었다.
더 풍성한 물음을 던지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니 침묵은 위대한 것이 아니었다.
침묵을 통해 던지는 '물음'이 위대한 것이었다.
수사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독방에서 지냈다.성당에서 공동으로 드리는 미사를 제외하면 말이다.
혹자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라 말하지만 ....다르다....
수도원의 독방은 달랐다.
수사들은 기도와 묵상과 노동을 통해 무한히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닫힌 곳은 열린 곳이 된다.
수도원의 독방에도 창문이 있었고 독방의 아래층은 작업실이었다.
개인별 뒤뜰도있어서 그 곳에서 꽃도 키우고, 채소도 키웠다.
봉쇄수도원의 수사들은 꽃과 풀, 나무를 통해서도 그리스도를 찾았다.
수도원에는 현재 20명의 사제 수사와 12명의 평수사, 그리고 수도원장 등 모두 33명이 생활하고 있다.
수도원 담장은 높았다. 출입은 1000년의 세월동안 금지돼 있다.
담장 너머, 1000년의 침묵이 흘렀다.
수사들은 그 침묵에 답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수도원 담장에 붙은 셔터문이 열리고 하얀 수도복을 입은 노수사가 서 있었다.
몇 살인지, 언제 수도원에 들어왔는지 물었다.
"1964년에 들어왔다. 70세다." ..사진을 찍었으나 피하지 않았다. 대신 한 마디만 했다.
"Not for journal"
전나무 숲길을 내려오다 뒤돌아서고 또 뒤돌아섰다.
수도원은 조금씩 멀어졌다.
대신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산 아래 수도원. 일상의 수도원은 가까워졌다.
영화 '위대한 침묵'의 말미에 장님 수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장님으로 만들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내 영혼에 이롭다고 여기셔서 배려를 하신 거다."
살을 찌르는 고통의 가시마저 감사의 눈물로 치환하는 힘.
그건 끝없이 내려가는 기도와 명상의 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