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기도문에 이렇게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 호칭이나 이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기도를 시작할 때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뭐?!”하고 고개를 돌리시며 관심을 가져주실 테니까 말이다. 우리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면 바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지 않는가?
유아 음악수업 때 아기들을 보면, 교사가 유아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주며 노래하는 활동이 있다. 감수성 많은 유아들은 이 때 친구들과 다른 엄마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한꺼번에 쏠리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하고 몸을 배배 꼬거나 엄마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숨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때 이름이 지닌 민감성을 발견하게 된다.
천방지축 이리저리 뛰며 아무것도 모르고 지낼 것 같은 유아들인데도 ‘자신의 이름이 불려질 때 남의 이목을 타는 것을 그리도 신경 쓰는구나!’ 하는 것을 보면서 이름과 관련된 인격, 인품 또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유아교육에 있어 유아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은 유아들의 정체성, 자아존중 또는 자긍심 등의 개발, 그리고 종국적으로 유아들의 인격개발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이 없다면 자신의 인격, 인품 또는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거나 소통할 수 있는 그릇 또는 존재감이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김춘수의 시처럼, 나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그 이름이 불려지면서 나는 나의 이름이 대변하는 존재로서 이름을 불러주는 이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이름의 중요성을 알려면 사람에게 이름이 없다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키 190센치미터 이상 인간들은 모두 식당 앞으로 모이도록!”
“맨 왼쪽 줄 앞에서부터 세 번째 훈련병, 일어서라!”
“마을 주민 15번!”
이런 호칭은 <‘천상천하에 유일무이한 아무개>라는 고유성이 없으므로 인격을 지닌 존엄한 개체로서의 지칭으로서는 적합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군대에서 인격적 대우가 말살된 엄한 훈련을 겪을 때, 고된 훈련 자체보다도 교관들의 인격적 모멸행위나 인간성 행위들에서 겪는 비애와 단절감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더 더욱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름 또는 그 이름으로 대변되는 인격과 인품은 따라서 인격적 대우를 해주고 받음에 있어 너무 중요하며 따라서 우리는 그 호칭이나 이름을 부를 때 조심 또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그 사람을 모든 이가 주목하도록 하는 것은 남의 시선 한 가운데로 그 사람의 존재 또는 그 이름으로 대변되는 모든 것을 노출시키는 일이므로 매우 신중해야 하리라고 본다. 당사자에게 있어 그의 이름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불려지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고 마음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사회적 위치도 있고 함께 하는 가족들의 입장도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보도록 불러 일으켜 세운다든가 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곤란한 점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빛나게 되는 자리일지라도 남의 이목에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인데, 예기치도 못 했고 원하지 않는 분위기, 마음이나 옷차림 등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아주 어려운 관계의 사람들과 조심스레 함께 하고 있는 자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며 일어나는 일은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불과 3-4세의 유아들인데도 수업 중 자신의 이름이 불려질 때 부끄러워하며 엄마 품에 숨거나 때로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등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어린 유아들을 보면서, 이름이 의미하는 정체성과 그 이름과 함께 하는 자아 존중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