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묵'을 보고난 이후,
영화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다음 두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위대한 침묵'은 .... 그리스도 제자들의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고자 원하는 이들에게
"나를 따르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고 하셨다.
영화속 수도원 수도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세속의 모든 것(가족, 친구, 재산, 자신들의 과거 등)
을 버리고, 불편함 즉, 자기 십자가를 지고 생활하고 있다.
또한 하느님은 다른곳이 아닌 '침묵'속에 계신다는 말씀에 따라
수도사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침묵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수도사들은 온종일 기도하며 고독하게 지내는 것이 하느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이라 생각한 듯하다.
모든 수도사들은 팔팔한 젊은이로 수도원에 들어온다.
그러나 본인이 수도생활을 포기하거나 강제 퇴출당하지 않으면
죽음을 수도원에 맞이해야 한다.
영화속에서의 수도사들의 삶은 지극히 아날로그적, 심플, 소박, 단순하다.
수도원 시설중 우리들이 생각하는 편리함이란 불을 밝히는 전기이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며,
일상사에서 대부분이 사물이 인간의 편안한 삶을 위해 마련된 것들이다.
물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편안함만을 추구하다보면, 인간은 정신적으로 쉽게 나태해진다.
나태해지면, 살다가 잘못을 해도 반성하고 고치기가 어려워진다.
고치기 어렵다는 것은 잘못된 삶이 편하고 그 편안함에 익숙해졌다는것을 의미할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불편함을 상대로 악전고투해서 불편함의 극치를 극복하면서 성공을 이루어낸다.
즉, 편안하게 살고픈 유혹을 극복해야만 성공이 뒤따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것을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셨는데,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은 각자 자신이 가진 편안함을 다 버리고,,
삶의 불편함 즉,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불편함을 찾아 불편함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평신도들이
이 수도원의 수도자들처럼 침묵속에서 금욕하면서 온종일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처럼 살아가기란 불가능 하다. 우리 평신도들이 어떻게 가족, 직장, 사회 등을
다버리고 이 수도사들처럼 세상과 등지고 살수 있겠는가 ?
우리 평신도들이 그리스도 제자로 살아기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나태해지지
말고 항상 부지런히 하느님 말씀대로 생활해나갈 것과 끊임없이 당신을 향해 기도하며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침묵'속에 큰 울림 - >
대부분 수도사들은 영화내내 침묵속에 생활하시는데,
딱 한분만 위대한 침묵을 깨셨다.
아주 나이가 많으신 장님 수도사였다.
일반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장님에 나이 많은 노인을 보았더라면,
아주 딱한 분이라는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장님 수도사 분은 외견상 보아도,
보는사람에게 편안함, 감동, 성스러움을 느끼게 하셨다.
머리 뒷편에 후광이 있는듯한 착각마져 들었다.
그러한 늙은 장님 수도사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이 장님으로 태어났지만, 하느님께서 본인에게 좋은 것을 주신것이라고
생각한다."이 말씀은 나에게 세상 모든 일은 본인이 어떻게 마음 먹기에 따라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다. 단지 나는 그것을 하느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하기 때문에 주신것이요.
나는 그 것에 감사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불교에서도, 세상만사 모든것이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였다
즉, 내가 긍정적인 눈으로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은 나와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이요, 내가 부정적인 눈으로 보면, 나와 내 주변에 해갈 될것이라고 하였다.
장님으로 사는것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
그러나 그것조차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였으며,
그 은혜에 평생 감사하고 사신 늙은 장님 수도사의 말씀이
나는 큰 외침이었다.
그리고 늙은 장님 수도사는 '죽음'에 대해서도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운 것은 하느님을 빨리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기쁜일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죽음을 '영원한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여행으로 생각하고 계셨다.
늙은 장님 수도사는 '죽음'을 이렇듯 간단하면서도 밝게 정의를 내렸다.
죽음조차로 기쁨으로 격상시키는 모습에 ..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났다.
그 분은 죽음 이후에 하느님을 뵙게 되고, 영생을 얻게된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는
듯하다. 영생에 대한 확신은 이 늙은 장님 수도사에게 죽음조차도 그 분의 경사로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있다.
늙은 장님 수도사의 말씀을 오랫동안 내 좋은 기억에 담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