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적 동화인 「행복한 왕자」가 출간되었을 때, 당시 평단(評壇)은 그를 안데르센에 견주어 평가하였다. 이처럼 주목을 받았던 「행복한 왕자」의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 어느 도시에 많은 보석으로 치장되고, 금으로 만들어진 왕자의 동상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동상을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다. 우연히 동상에서 쉬려던 제비는 왕자의 부탁으로 동상에 붙어 있는 보석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결국 제비는 왕자의 심부름을 하다가 남쪽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왕자의 발밑에서 죽고 만다. 이렇게 보면 「행복한 왕자」는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주의의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는 동화다. 하지만 행복한 왕자의 이야기는 이런 내용만 담고 있을까?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과연 행복한 왕자일까?
「행복한 왕자」를 읽으면서, 와일드가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려 보도록 하자. 도시의 한편에는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기둥 위에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왕자의 동상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 변두리에 사는 상처투성이 손의 재봉사와 병든 아들, 너무 굶어서 정신을 잃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젊은 희곡 작가, 길모퉁이에서 혹한에 떨고 있는 맨발의 성냥팔이 소녀가 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절’이다. 즉 모든 소통의 부재(不在)이다.
부유한 세계와 가난한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완벽한 단절은 갈등조차 유발하지 않는다. 두 세계 사이에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것은 무거운 침묵의 이미지로 이야기 전체를 억누르고 있다. 적어도 쾌활하고 진솔한 성격의 제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비의 등장은 이런 이미지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다. 단절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발이 동상 받침대에 단단히 붙어 어찌할 수 없는 ‘불행한 왕자’와 세상과 단절된 채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를 제비는 기꺼이 연결해 준다. 제비는 겨울을 맞아 얼어 죽을 때까지 이 암울한 상황에 ‘소통의 다리’를 놓음으로써 두 세계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불행한 왕자도 「행복한 왕자」가 되었고 사람들도 행복해졌다.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불행하며, 그 불행과 불행 사이에는 절대 무관심이 도사린다. 반대로 소통이 존재하는 세계는 행복하며, 그 행복과 행복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존재한다. 제비의 희생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단절된 두 세계 사이의 소통을 완성해 놓고 죽음을 맞는 제비는 어찌 보면 달관한 철학자 같다.
‘소통의 철학’은 20세기 철학의 중심 과제이기도 했다. 철학이 소통의 문제를 주요 과제로 삼은 것은 갈등조차 없이 무관심으로 단절된 현대인의 삶에 ‘관계’를 조성(造成)하려는 노력의 한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소통의 메신저가 필요 없을 만큼 스스로 사회 속 타인들과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 김용석의 <단절된 두 세계를 잇는 ‘소통의 다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