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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읽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1.06 조회수  |1163


필 명: 행복한 영이

책 제목: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내가 이 책을 택하게 된 것은 국민 엄마란 호칭을 듣는 유명 배우인 김혜자의 이름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전 김혜자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어떤 내용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단순히 ‘김혜자’라는 낯익은 이름과 예쁜 제목에 끌려서 충동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는 제가 기대했던 김혜자의 사적인 뒷이야기도, 예쁜 제목이 풍겨줬던 분위기도 없었습니다. 단지 끝없는 전쟁과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김혜자는 이들을 돌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신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며 되묻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분명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눈동자 색이 다르고 체형이 달랐지만 그들 역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먼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그들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제 곁에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그들을 대할 때 경계심을 갖고 학문적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왜 그들은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왜 스스로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만든 것일까?” 등등, 왜 그들이 기아가 되고 난민이 됐는지에 대해서 해답을 얻기에 급급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정말로 그들을 도와주려면 무작정 퍼다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들을 살 수 있게 사회적인 인프라부터 구축해나가는 동시에 그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김혜자는 이런 제 궁금증을 무시라도 하는 듯이 제 궁금증엔 아랑곳 않고 계속 이들의 처참한 상황만 들려주면서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녀의 낮은 말은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인가, 정확히 말해서 책의 후반부분에 들어서입니다. 한 작은 여자아이가 손에 풀을 든 채 서 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미리암’이라는 여자아이였습니다. 풀만 먹어서 입술과 얼굴이 옅은 초록빛으로 변해있는 작은 아이가 유난히 내 눈에 띄게 들어왔습니다. 옅은 초록빛의 얼굴을 한 아이를 본 순간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이가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슬픈 표정을 지었으면 아무 느낌 없었을 것을, 아이는 김혜자와 마주 앉아 웃고 있습니다. 풀만 먹으면서 뭐가 좋다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초록빛의 얼굴이 울고 있는 얼굴보다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문득 성서 속의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길에 쓰러져 있는 행인을 보고 바로 그를 도와줍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행인을 보고 이 사람의 상처가 어떠하며, 왜 이렇게 길에 쓰러져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 의문을 갖기 않고 무조건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돌봐줍니다.

 또한 예수님이 했던 말도 떠올랐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20년 넘게 예수님과 함께 했으면서, 정작 그들이 진실로 필요로 한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김혜자 말처럼 현대사회에 생겨난 새로운 인종인 난민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먹을 것과 잠잘 곳이었습니다. 사회적인 인프라의 구축이니 어쩌니 했지만 그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고 약 한번 못 쓰고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미리암에게 필요한건 미리암을 교육시켜서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그 손에 쥔 풀을 뺏고 제대로 된 밥을 쥐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가슴으로 그들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니라, 머리로 그들을 보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내가 가슴이 아닌 머리로 생각하는 동안 지나쳐 온 많은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가슴으로써 아이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반부까지 읽던 책을 과감히 덮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슬프도록 천진난만한 웃음과 이들을 돌보며 많이 울었을 김혜자가 보였습니다. ‘도대체 신이 어디 있는 것인가요, 있다면 이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텐데’라고 외치는 그녀의 절규가 비로소 또렷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김혜자가 시종일관 무덤덤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줄 알았습니다.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결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무덤덤한 어조(語調)의 뒤에는 절박함이 서려 있었으며 낮은 목소리 뒤에는 긴박한 외침이 서려 있었습니다. ‘제발 도와달라며’ 대한민국 유명 배우인 그녀가 우리에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김혜자가 반복해서 찾던 신은 우리에게 커다란 과제를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과 같이 너희도 그대로 행하여라.”던 예수님의 말씀이 예전에는 막연했는데 이제는 이 책을 통해서 그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것 같았습니다. ‘신이 어디 있냐며’ 반복해서 외치는 그녀에게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신은 아프리카를 버리지 않았으며 또한 떠난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에게 과제를 남겨주신 것뿐이라고 말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그들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줬습니다. 이것은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돕고 살아가라는 신의 뜻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미리암에게 풀 대신 제대로 된 밥을 먹이는 것, 손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있는 아이에게 그 곳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게 놀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등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입니다.

 나는 이 책을 내 책장 중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언제나 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학생들이 선생님이 내어주신 과제를 잊지 않기 위해 포스트잇에 붙여서 책상 앞에 붙여놓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앙상한 아이의 몸에 살이 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보려고 합니다. 가슴으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과 김혜자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기를,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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