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시를 쓸 때
글은 재주로 쓰는 것인 줄 알았다.
은유를 비틀고
상징성 있는 말로 버무리며 몇 행의 글을 앞뒤로 섞어 붙이면
시가 되는 줄 알았고
누구도 내게 무슨 뜻이냐고, 무얼 표현한 것인가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어
혼자 멋 부린 글에 만족하며
난 혼자 참 명예롭고 또 편리하였다.
수필가 흉내를 낼 때는
흔한 얘기들이지만
새로운 관점, 재미난 구성에 양념 칠을 조금 한 후,
거기에 약간의 의미성을 부여하면 한 편의 좋은 줄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언젠가 무슨 글을 쓸 때 써먹으려고
재미난 일을 겪거나 하면
아니 흥미로운 글을 읽을 때도 그 내용을 간단히 메모 해두곤 했었다.
어릴 적 내게 글쓰기를 가르친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남의 흉내를 내거나 남의 글을 자기 것처럼 쓰지 말고
나 자신의 얘기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담백 하게 곧이곧대로 다 쓰라고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어떻게 100프로 솔직하게 다 쓰냐고
조금은 감추고 포장하는 것도 있어야지!
그리고 적당히 버무려 내놓아야지! 하였다.
아이고, 남이 숨겨진 나의 비밀을 다 알고 흉보면 어떻게 해?!
평생 창피 당하는 것보다는 좀 감추는 게 낫지! 하였다.
그래서 웬만한 것들은 그럴 듯하게 버무려 다 썼어도
정말 창피스럽다고 생각되는 것은
도저히 있는 그대로 다 쓸 수는 없었다.
그러다 결혼하였고
일기를 포함한 나의 글을 몰래 읽고 글 원본까지 떼어 방송사 애청자 코너에 보내며 좋아하는 아내를 본 후
나는 그나마 부끄러운 내가 더 공개되는 것이 싫어
나를 더 꽁꽁 숨기는 쉬운 길로 절필의 길로 들어섰다.
그래서 지금 그나마 없어진
어릴 적과 청년 시절 몇 편의 글을 쓴 것 말고는
나는 더 이상 글을 쓴 것이 없다..
직업상 필요한 글을 써온 것은 있지만
그러다가 직업과 관련된 책을 세 권 낸 것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저렇게 나는 내 영혼과 마음을 다한 글을 쓴 것 없이
이순의 나이를 넘겼다.
치열한 삶을 살아낸 것이 없든지
아니면 그러한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삶에 이르는 과정에서
친척 중 시인이라는 사람이 썼다고 자랑하는 시를 읽으면서
아무런 감흥이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간혹 신문에 발표된 시를 읽으면서도
너무 뻔하고 평범하지 않나? 왜 이렇게 밖에 시를 못 쓰지? 하는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마음으로 영혼으로 시를 써야지!
진짜 살아낸 자신의 삶으로 시를 써야지! 했다.
살아 낸 자기의 치열한 삶에서 시심을 채로 걸러 축약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진 못 하나?! 했다.
언젠가 시를 쓴다면
나는 정말 내가 살아낸 삶을 써야지! 했다.
그런 생각이 평생 가슴에 박혀있었지만
그렇지만 나는 그간 한 편의 시도, 수필도 쓴 적이 없다.
결국 자신은 쓰지도 못하면서 남이 애써 쓰는 시만 무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요즘 옛 학창 시절의 한 친구가 내게
시를 한 수 썼는데 봐달라 하며
학창시절 ‘시인’이었던 친구의 평을 듣고 싶다고 했다.
평생 시심이라곤 모를 것 같던 친구!
열심한 장사꾼 같기만 하던 친구!
근데 그가 쓴 시가 참 잘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평생의 집념을 떠내 흘려 보내버리지 않고
오랜 세월 가슴에 품고 살면서
참 아름답고 끈질기게 붙들고사 잘도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글들은 참 간단하였지만 짙고 깊은 상념이 감동적으로 잘 축약되어있었다.
그가 던져준 가슴을 뜨겁게 하던 한 마디
너, 옛날 시인이었잖아! 하던 말!
가슴을 치며 찌르던 그 말!
뭔가 오래 피해있던 곳을 들킨 것 같은 마음, 그 친구는 알았을까?!
그러면서 오랜 세월 절필의 저 어두운 방을 빠져나와버릴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나를 사로잡았다.
나, 정말 이제라도 시 한 편씩 써볼까?
나, 이제라도 수필 한 구절씩이라도 써볼까?
추호도 가식 없이 자신의 삶을 그래도 다 밝혀내면서도
남들이 감동 속에 읽을 수 있는,
진리와 정의와 자유와 그리고 그로 인한 진정한 평화와 사랑의 정신이
아름답다고 공감받을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참으로 치열하게 살 수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가장 멋진 시들을 줄줄 쏟아낼 수 있는 날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막힘도 유보도 없는 진지한 삶을 마구 살아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