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시골 아저씨 같은 사제>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 약자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물질에 신경을 쓰지 않고 겸손한 사제, 겸손하여 언행에 예의를 갖춘 사제, 성사집전을 경건하게 하고 강론을 경건하게 하는 사제, 편견과 편애를 멀리 하고 후배 양성에 마음을 쓰며 죽기까지 사제직에 충실한 사제..."
위 글은 신학교 산책길 모퉁이에 언제부터인지, 누구에 의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조그마한 나무 푯말에 적힌 글인데, 들리는 말에 따르면 "평신도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제상입니다(조정래, 일요한담, 가톨릭 신문 참조).
"먼저 자신이 피안으로 건너가 다른 사람들을 건너게 해주며, 먼저 자신이 해탈하고 나서 다른 사람도 해탈케 해주며, 먼저 자신이 수양하고 나서 다른 사람도 수양케 하며,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의 마음도 밝게 해주며, 먼저 자신의 먼지를 털고 나서 다른 사람의 먼지도 털어 주며, 먼저 자신이 즐거워 한 후에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해준다."
위 글은 최인호씨의 구도소설 "길 없는 길"을 읽다가 발견한 글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고 따르는 구도자들은 자기 한 몸 구제하는 데 정신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바세계를 헤매는 숱한 중생들과 일심동체가 되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 모습대로 솔직하게 살되 만나는 이들로 하여금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사제, 많은 일보다는 꼭 해야 할 일을 정성껏 하는 사제, 명령하기보다는 귀가 큰 사제, 너무 유식하고 고상해서 가까이 갈 수 없는 사제가 아니라 때로 실수도 하지만 담담하게 웃을 수 있는 사제, 그래서 누구나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골 아저씨 같은 사제를 원합니다."
위 글은 본당에서 사목하고 계시는 한 수녀님이 그려보는 바람직한 사제상입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어려운 생활이 목자로서의 삶, 사제로서의 삶인 듯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요구나 기대치는 높은 반면, 사제 역시 인간인지라 실제 생활은 그러한 기대에 결코 부응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제로서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강론대 앞에 서는 것이, 그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곁들여 길 잃고 헤매는 양 한 마리를 되찾고 기뻐하는 착한 목자의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착한 목자로서의 삶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해보는 낭만적인 삶이 결코 아닙니다. 끝없이 펼쳐진 파란 풀밭 위에서 여유 있게 책을 본다든지 피리를 부는 그런 유유자적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늘 양떼의 머릿수를 세야하고, 뒤쳐지는 양들을 끊임없이 몰고 가야하며, 때로 황량한 들판에서 노숙을 하는 거친 생활입니다. 때로 퍼붓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아야 하며, 수시로 다가오는 위험과 돌변의 사태를 대비해 언제나 긴장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착한 목자로서의 삶입니다.
우리의 사제들이 착한 목자로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숱한 부족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충실한 사제, 다른 무엇에 앞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제, 갈 곳 없는 사람들,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의지처가 되는 사제들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