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미사 - 제대
작성자 |길을 걷다
작성일 |2009.09.21
조회수 |1510
시카고 시내 한 복판,
건물 한 귀퉁이에 끼여서
성당인지 아닌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고보니
의당 성수가 있어야 할 곳이 말라있었습니다.
'성금요일도 아닌데 웬일이람..'
문 바로 앞에서 신부님이 주보를 나눠주고 계셨는데
인사를 하기보다, "성수가 없네요" 소리가 먼저 나옵니다.
웃으시면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성수 연못"이라 해도 될 만큼의 성수가 콸콸 나와 연못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성수를 찍고 들어가는 이유가, 장소로서 성과 속의 구분을 짓고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라면,
보통 우리의 삶의 자리는 따로이 축복이 필요한 건가, 어디에든 하느님이 계실건데,
뜬금없는 생각으로
인사보다는 형식에 급급했던 저를 변호하듯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로마시대의 샌들을 신으신 하얀머리 신부님이 주일미사를 자유롭게 집전하십니다.
이 신부님 역시 성찬의 전례 이외에는 제대 앞에 서시지 않으십니다.
교리에 익숙치 않았던 예전에,
'제대'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신자들은 제대를 '향하여' 앉아있고 신부님은 제대 뒤에서 신자들을 '향해서' 앉아 계시지요.
십자가와 제대 그리고 앉아 계신 신부님까지 미사 드리는 내내 한 눈에 들어오는 형국입니다.
미사는 제사라고 하지만 말씀으로부터 끝인사까지 제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굳이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가 나눠지는 기분은 안들었지요.
말하자면, 제대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느꼈던 겁니다.
그러다가 가끔 외국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때
신부님이 제대 옆에 자리하시고 강론까지 제대 옆에서 하시거나 혹은 신자들 있는데까지 진출을 하시면서도
제대 앞에 서질 않으시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다가
마지막 만찬을 재현하는 그 순간 제대를 사용하시는 것을 보고 의미가 확 다가왔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 미사가 제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만 예수님을 상징하는 '제대'를 '사용'하는구나..싶었던 겁니다.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한국에서의 9/20 복음과는 다른 것을 읽습니다.
순교자 대축일이라서 그런가..
'누가 더 위대한가.'
50세가 넘어서부터 마라톤을 시작하셨다는 신부님은
자신이 능력없이 살아왔음을, 좌절의 고비고비마다 누군가를 통해 하느님이 돌보아 주셨음을,
그리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였음을 미소와 함께 말씀하십니다.
양형 영성체로 저녁미사를 끝내고 나오니
밖은 어둑어둑,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시카고 밤거리를 뒤로 한채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하루도 무사함을 감사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