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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삶

" 강변역에서 " 외 시3편 / 정호승

작성자  |nittany 작성일  |2009.07.19 조회수  |1561

 



강변역에서


                                                                   / 정호승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 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바람 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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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갈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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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足式을 위하여

                                            

                                                                                        / 정호승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가르치지 마라

세족식을 위하여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물속에 계속 발을 담글지라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마라


지상의 모든 먼지와 때와

고통의 모든 눈물과 흔적을 위하여

오늘 내 이웃의 발을 씻기고 또 씻길지라도

사랑을 위하여

사랑의 형식을 가르치지 마라


사랑은 이미 가르침이 아니다

가르치는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밤마다 발을 씻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는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거것 앞에 서 있다


가르치지 마라 부활절을 위하여

가르치지 마라 세족식을 위하여

사랑을 가르치는 시대는 슬프고

사랑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의 시대는 슬프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출발천사

    치료를 위해 입원한 날 원목실 자원봉사자매님이 기도를 해 주시는데 두 볼에 눈물이 쭈르르 흘렀습니다. 잘 울지 않는데... 아마도 주님께서 지켜 주실거라는 기쁨의 눈물이었겠지요...제가 사랑하는 사람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힘내겠습니다...

    2009-07-20 09:00:42 삭제
  • nittany

    지난 주말 아열대성 폭우가 내리던 주말 저는 아침에 운동나갔다가 비만 쫄닥 맞고 들어 왔지요... 집안에서 지낼 신자분들 위해 제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 몇 편 골라 올렸습니다. 물론 출발천사님도 보실 줄 알았지요... 더운 여름 힘내시고 빨리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위 시들 중 한편이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렸다고 합니다. 어떤 시인지 추측해 보시길... 지금 어린 학생들이 이런 시를 이해할 만큼 성숙한지는 의문이 가지만 .. 옛날 고교시절 니체, 카프카의 작품 등 어려운 책만 일부러 골라 읽으며 머리 아파하던 기억이 나는 군요... 그 땐 그것이 유행이었지요...

    2009-07-22 10:00:2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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