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농아친구들이 나누는 수화를 보다가 깨달은 일
작성자 |한강의벗
작성일 |2009.07.01
조회수 |1416
점심 때문에 나갔다가 귀사 길에 본 일이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사람이 다정하게 수화로 대화를 나누며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한 손에 검은 비닐 주머니 가득 뭔가를 들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손짓과 얼굴 표정으로 열심히 수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리 없는 수화와 얼굴 표정으로만 나누는 대화였지만, 두 사람의 대화가 참으로 적극적이고 진지하며 다정하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어느 편이 농아인지, 아니면 두 사람 다 농아인지 궁금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성당이 있었고, 성당 바로 옆에 붙은 길거리 공원으로 두 사람은 당연한듯 수화를 나누며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두 농아들의 모습과 그들의 재미난 수화에 빨려 들어가듯 나도 몰래 그들을 따라 길거리 공원으로 들어갔다.
거기 다른 세 사람의 농아친구들이 돌의자에 앉거나 길게 누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일반사람과 똑같아 보이는 그들이 농아인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곧 새로 도착한 두 농아자와 열심히 손짓 눈짓으로 대화를 능숙하게 나누는 모습이 농아들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순간 비닐봉지를 끄르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다정하게 나를 보고 빙긋 웃더니 끌러 놓은 소주와 순대 등을 가르키며 아주 자연스럽게 나보고 와서 좀 들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배를 문지르는 시늉을 한 후 두 손을 합장하며 ‘됐다, 그러나 고맙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자 그러지 말고 조금만 먹어보란다. 나도 계속 지지 않고 ‘나 방금 점심을 마쳐 조금도 못 할만큼 지금 배부르다, 여러분 먹기에도 모자라는데 그냥 잡수시라’고 했다. 이상하게 나도 모르는 사이 수화가 저절로 풀리고 있었다.
소주와 순대를 나누며 그들이 뭔가 분주히 수화를 나누는데, 그중 누워있던 한 사람은 미안한 표정으로 ‘어저께 뭔가를 잘 못 먹어 배탈이 났고 그래서 오늘은 술도 못하고 음식도 일체 못 먹는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모두들 다 친구사이고 농아분들이시냐’고. 그랬더니 다들 노인정인지 장애자 친목모임인지 하여튼 다 이 동네에서 만난 농아친구들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서로 다정히 음식을 나누며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다. 안주가 좀 부족해보이니 좀 더 준비해가지고 나누시면 좋겠다. 그런 뜻으로 여기 조금 내놓겠다’고 하면서 약간의 돈을 내놓았다. 그랬더니 약간 멈칫하다가 흔쾌히 받는다. 작은 성의였지만, 그래도 마음에서 우러나 내놓는 성의인데 크게 감동을 않고 그냥 당연한듯 척!하고 받는 것으로 봐서는 보통 때 많이 받아 본 경험이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작은 나눔의 실천이라 생각되어 조금도 언짢지 않았다.
나중에 사무실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수화를 배운 적도 없고 누구와 해본 경험도 없는데 그들의 대화를 꽤 많이 알아들은 것이 신통하였다. 그들을 몰랐을 때, 그리고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뒤 따를 때는 그들이 나누는 수화를 하나도 이해 못하였었는데 말이다.
낯선 그들이었지만 그들을 조금이나마 알게되고, 그들이 누굴 만나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그들의 관심 사항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될 때 그들의 수화를 알게 되고 또 그들과 뜻이 통함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성당에서 형제 자매들을 만나든, 또는 집에서 가족이나 이웃 누구를 만나든, 우리가 만나는 이들이 하는 일, 그들의 관심, 걱정거리들에 대해 먼저 알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같이 동감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대화는 저절로 풀리고, 통하며, 그들과 나누는 사랑의 나눔도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만난 농아분들이었지만 내게 깨달음을 준 것에 감사하고 또 내 작은 관심과 나눔의 실천이 그들의 마음을 잠시라도 훈훈하게 하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