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 방주연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 아 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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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 아 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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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참으로 빨리 흐르는 것 같다.
한강 가에 살아서 그런 가?
요즘 옛날 타령을 부쩍 더 하는 것이, 어째 좋은 징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벌써 20년을 훌쩍 넘게 지나가 버린 시절이다.
그 때 신부님은 사십대 후반 아니면 오십 초반 쯤 이셨던 것 같다.
미남에 중후하시고, 좀처럼 드러내시진 않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안아 주실 것 같은 분이었다.
늦은 나이에 멀리 타국에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국 신부님을 모시고 미사를 드리고 싶어 하는
그 간절한 소망에 이끌려 다섯 시간 넘는 길을 운전하여 오시던 분이었다.
신부님, 수녀님 오시는 날은 우리 모두에게 기쁘고 기쁜 날이다.
한 주 내내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듣던 대학원 수업을 마친 금요일 늦은 오후...
모두들 성당에 모여 미사를 드린다.
여름의 깊은 계곡 넘어.... 저녁 해가 Nittany산 위로 질 무렵,
Spring Creek 공원의 개울가 잔디밭에 애들이 뛰놀고,
자매들은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가지런히 펼쳐 저녁상을 차린다.
아침에 아이들 잠자는 모습을 보며 학교로 나갔다... 수업 후 집에 와 잠시 저녁 먹고 다시 학교로 가서
새벽 한시에나 돌아오는 일과를 쳇바퀴처럼 돌던 시절...
잔디 위를 펄펄 뛰어 다니는 아이가 얼듯 보아 자기 아이인지 옆집의 아이인지 분간 못하던...
그렇게 정신없이 살던 시절이었다. 그 때, 애들은 어떻게 저렇듯 빨리 자라는 가 싶었다.
저녁을 마칠 무렵, 어느새 다가온 어둠에 쫓겨 모두들 우리 집으로 몰려오면 작은 술상을 다시 차린다.
좁은 학교 아파트 방에서 자매들은 애들 재우며 이야기 꽃 피우고,
신부님, 수녀님 모시고 모두들 거실에 끼어 앉아 돌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신부님을 집에 모시는 날은 평생 안하던 걸레질하며 방과 거실, 화장실 바닥을 구석구석
닦는다. 안방 침대에 신부님을 위해 준비한 침대시트와 신부님 베개를 꺼내 주무실 자리를 준비한다.
새벽 한시가 넘으면 우리의 간절한 청에 신부님이 노래를 두세 곡 불러 주신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
아니, 저 노래는 내가 대학교 다닐 때 부르던 노래인데... 어찌 우리 신부님이 부르시다니...
해바라기의 노래였던가?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하던 사람도 많았고, 나를 사랑해 주던 사람도 많았던 대학시절....
폼 잡으며 클래식 다방만 다니다 사랑의 달고 쌉싸래한 맛을 처음 알기 시작했을 무렵
‘당신의 마음’이란 노래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혹시... 신부님도 그 옛날 잊지 못할 애틋한 첫사랑이?
모두들 눈빛이 반짝인다.
그러나 신부님의 당신은... 역시 그분이셨다.
..................
지난 시절 중후한 음성으로 노래를 너무도 잘 부르시던 신부님이 이제 칠순이 넘으셔서
오십대에 접어든 우리들과 얼마 전 신부님 아파트 근처 식당에서 만났다.
다들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십년 전쯤 신부님께서 한강성당에 계실 때
한두 번 모이고는 다들 무엇이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서로 연락이 끊겼다.
그 날 저녁, 다들 모인 가운데 옛날 미국 이야기 하시며 너무도 즐거워하시던 신부님 모습을 보며,
가끔, 신부님께서 “ 옛날 그 친구들 잘 있나? ” 하고 물어 오실 때,
신부님의 그 뜻을 알면서도 그동안 대답도 않고 그냥 넘어간 것이 너무 죄송했다.
사실 옛날에 내가 한두 번 전화해 다 같이 만나자고 연락해도 반응이 없자...
나도 은근히 화가 나서 연락을 끊고 살았다.
그러다 지난 성삼일을 보내며, 웃기는 자존심 같은 것 다 버리고 거의 십년 만에 연락을 했다.
이제 신부님 모시고 서로 만날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왜 이리 살아 왔나... 다시 나의 좁은 마음을 탓하며 뉘우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