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고 싶다
/ 김재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 둔 금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다가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 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 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는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여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내 어리석음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이해하는
너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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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견
/ 김재진
나는 오십견이 쉰 살 된 개인 줄 알았다
오십에도 사랑을 하고 오십에도 눈물이 있는지 비릿한 나이에는 알지 못했다
오십에 기르게 된 어깨 위의 개들을 풀어놓아 먹이려고 침을 맞는다
어깨에 꽂힌 이 바늘은 우주와 교신하는 안테나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피뢰침을 세워놓고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이 짐승은
못돼먹은 성깔에 내린 벼락일지 모른다
벼락 치듯 가버린 친구 한, 둘 늘어나는 쉰 살 된 몸 안에 개들이 살고
부글거리는 속 지그시 눌러 앉히고 양념 센 국그릇에 소 떼가 산다
오십에도 그리워할 것이 있고 오십의 하늘에도 별이 돋는지
들끓는 나이에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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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사람과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 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리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 보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 소릴 챙겨 놓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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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시인 깁재진씨는 ' 시를 장미 향기 같은 것 ' 이라 말하곤 한다. 상처를 통해 진주를 잉태하는 조개처럼 장미또한 어둡고 추운 한밤중에 가장 매혹적인 향기를 내뿜는다는 것이다. 시에 대한 김재진씨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 저는 시를 삶의 상처라고 생각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삶의 상처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그 상처들과 화해함으로써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슈베르트가 " 네 슬픔으로 비롯된 음악이 사람들을 위안하고 기쁘게 한다 ! " 고 한 적이 있는데, 저도 그래요. 이제는 내 상처에서 비롯된 시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위안할 수 있기를 바라게 돼요. 저 자신만 해도 세상에서 소외된 상태에서 간절하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이 시를 쓰게 했어요." - 시집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의 발문 '상처받은 나무의 고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