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기 2
작성자 |길을 걷다
작성일 |2009.04.13
조회수 |1727
자유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역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여행책자에 근사하게 나온 게딱지를 찾아 기차를 타고 국제적인 항구도시 '지룽'으로 향하였습니다.
비가 오고 있어서인지 우울하고 음산하게 가라앉은 도시여서 걷기를 포기하고 택시를 탔습니다.
일명 Fish market. 노량진 수산시장의 십분지 일이나 될까, 작은 시장에서 그나마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 싱싱한 해산물을 배부르게 먹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였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대불선원이 있고 산 꼭대기에 22m가 넘는 흰색 관음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중정공원.
언젠가 사진으로만 본, 리우 데 자네이로의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흰 옷을 입으시고 팔을 넓게 벌리신 부활하신 예수님상을 떠올리며, 해안의 절벽에 면해 있을 이 관음상도 볼 만 하겠다 싶어서였지요.
막상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고즈넉한 절의 분위기를 상상했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던 겁니다.
바다로 면한 관음상의 뒷모습을 보며 빨리 올라갔다 내려오자고 딸아이를 찾는데 아이는 사진기 배터리를 챙기느라 저에게서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본시 관음상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어야 하건만 저 모습은 꼭 화난 모습같네 하며 올려다 보고는 뒤를 돌아보니 꼭 늑대만한 검은 개가 뒤처져 따라오는 아이의 곁을 둘러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다섯마리나..
옆으로 다가가 아이를 감싸면서 성호경을 그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또 다급할 때만 하느님 찾는 제 버릇이 나왔습니다. 평상시에 좀 잘하지..쯔쯔..
여하튼 그 때는 그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이, 둘이서 큰소리로 주님의 기도를 하며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데 뒤에서는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앞에서는 눈동자의 빛이 다 빠져 먹먹한 눈을 가진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순간 퇴로가 막힙니다.
그래도 늘 저희 곁에서 지켜주시는 하느님과,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셨던 분 덕분에 무사히 도망쳐 타이뻬이 기차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참, 원래 대만 여행기 2탄은 그 주제가 친절한 버스 기사 아저씨 이야기였지요.
지룽의 기억이 다시금 살아나 말이 길어졌습니다.
지룽에서 일찍 돌아온 탓에 호텔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하여 한 군데 더 뛰자며 선택한 다음 목적지는 양밍산 국립공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산과 꽃, 나무를 보면 놀란 가슴 진정이 좀 될까 싶어서였지요.
비가 조금씩 오고 있는 국립공원은 아름다웠지만 거기에도 버려진 개들이 꽤 있었습니다.
딱 30분만 걷기로 하고는 개를 피해 돌아 내려와 번호만 확인하고 무작정 버스를 탔습니다.
정신없이 타고보니 버스비가 얼마인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도무지 알 턱이 없었습니다.
궁리끝에 기사 아저씨에게로 가서 '버스비'를 영어와 한자로 섞어 써서 보여주고는 대만달러 100불짜리를 내밀었습니다.
이 아저씨, 갑자기 승객들을 홱 돌아보며 뭐라고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동전지갑을 꺼내며 자기 동전을 셉니다, 서로서로 쳐다보며..
잔돈이 없는 여행객에게 잔돈을 바꾸어 주라고 하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가방을 몇번이나 뒤집어 잔돈을 찾아 세어보며 낭패한 표정을 짓는 한 여학생을 바라보던 한 승객이, 자기의 지갑을 열어 저에게 10불짜리 동전 10개를 건넵니다.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상하고도 따뜻한 마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역시 카리스마 넘치는 대장 기사님의 지휘로 일사불란 하게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
기사 아저씨도, 저에게 동전을 건넬 때만해도 웃지 않던 아저씨도 셰셰를 연발하며 웃는 저희들에게 그제서야 한번 씨익 웃어주십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당연히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쑤욱 박힙니다.
역시 공간(장소)를 채우는 것은 사람인가 봅니다. 따뜻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대만도 저에겐 그러했습니다.
바로 제가 말했던 또 다른 천사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행복한 부활 되십시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던 딸아이는 이제 개라면 쳐다보지도 않으려 합니다. 그날 밤에 몸살까지 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