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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마지막 설교

작성자  |nittany 작성일  |2009.03.24 조회수  |1497

 


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마지막 설교(1)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 마태오복음 6,3.


 

 


행복도 그렇고 성스러움도 그렇고 자선도 그래요.


행복한 사람은, 나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행복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사건으로 인하여


맛보게 된 잠시 동안의 흥분 또는 쾌락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에는 이유가 없어요.


그냥 행복한 겁니다.


진짜 행복은 몸으로 경험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식(意識)의 경계 안에 들어오지 않아요.


스스로 행복한 줄 모르는 게 행복입니다.


 



성스러움도 그래요.


당신이 스스로 자신의 성스러움을 의식하는 순간


그것은 당신 혼자 의로운 독선(獨善)으로 변질됩니다.


선행을 하면서 그것이 선행인 줄 모를 때 당신은 더없이 선한 행위를 한 것이에요.


누구에게 덕을 베풀면서 스스로 덕을 베푼다는 의식이 전혀 없을 때


당신은 가장 순수한 덕을 베풀고 있는 겁니다.


당신 오른손이 무슨 착한 일을 하고 있는지, 당신 왼손이 전혀 모르는 거예요.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는 일을 그냥 하고 있는 것뿐이지요.


잠시 시간을 내어, 당신이 스스로 당신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교묘하게 조작하여 자신에게 강요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성찰해보십시오.


그것들이 정말 당신의 덕목들이라면, 당신은 그냥 그것들을 즐길 뿐,


그것들이 따로 무슨 덕목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성스러운 줄을 모르는, 그것이 성스러움의 첫 번째 성질(性質)입니다.





성스러움의 두 번째 성질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력은 당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당신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노력은 당신 입에 음식을 넣어줄 수 있지만 그러나 식욕을 돋구어주지는 못합니다.


당신을 침상에 누워 있게 할 수 있지만 잠을 재우지는 못하지요.


노력은 당신으로 하여금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게 할 수 있지만 진실을 만들게는 못합니다.


노력으로 남들이 칭찬할 만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순수한 칭찬을 사람들로부터 자아낼 수는 없는 거예요.


노력은 당신에게서 봉사활동을 끌어낼 수 있지만,


사랑과 성스러움은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변화와 성숙이 아니라


모두가 억지춘향일 뿐이에요.


 



변화는 깨어남과 알아차림으로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불행을 알아차리십시오.


곧 사라질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오는 것이 행복이에요.


당신의 교만을 알아차리십시오.


곧 아래로 고개가 숙여질 것이고 당신은 저절로 겸손해질 것입니다.


당신의 집착을 알아차리세요.


곧 녹아 없어질 것이고 결과는 자유입니다.


사랑과 자유와 행복은 당신이 노력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은 그것들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랑과 자유와 행복에 반대되는 것들을 성찰하고,


성찰을 통해서 그것들을 죽게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성스러움은 사람이 그것을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이것이 세 번째 성질이지요.


당신이 행복을 바란다면 그것을 얻지 못할까봐 걱정할 것입니다.


당신은 끊임없이 불만 상태에 있을 것이고,


바로 그 불만과 걱정이 당신의 행복을 망가뜨리는 거예요.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가 되기를 원할 때 당신은,


당신을 그토록 이기적이고 허망하고 속되게 만드는


바로 그 탐욕과 야심을 먹여 기르는 것입니다.





알아 두십시오.


당신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두 가지 근원(sources)이 있습니다.


하나는 당신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만들고자


노력하게 밀어붙이는 당신의 교활한 에고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자연의 지혜(the wisdom of Nature)지요.


당신이 이 지혜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변화를 온전히 대자연의 지혜에 맡기세요.


그게 당신이 할 일의 전부입니다.


 



당신의 에고는 대단한 기술자(technician)지만, 그러나 창조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것은 온갖 기술과 방법을 동원하여 엄격하고 고집스럽고 기계적이고


편협하고 딱딱하고 빈틈없는 모조품 ‘성자’들을 만들어 내지요.


그들이야말로 성스러움과 사랑에 정반대되는 악당들입니다.


자기는 세상의 속물들과 다른 성별된 존재라고 생각한 자들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요.





대자연은 기술자가 아닙니다.


대자연은 창조합니다.


당신이 스스로 포기하여,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 바라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어디에 이르고자 노력하지 않고 무엇을 얻고자 애쓰지 않을 때,


그 때 당신은 간교한 기술자가 아니라 창조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때 당신한테 있는 것은, 사람의 어리석음과 이기심, 집착과 두려움을


그냥 바라봄으로써 소멸시키는 예민하고 생생하고 주의 깊고 따뜻한


‘깨어 있음’(awareness), 그게 전부올시다.


그 뒤로 이어지는 변화는 당신의 청사진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당신의 의지와 계획을 일축하고 당신 왼손 모르게 당신 오른손으로 일한


대자연의 열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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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출발천사님, 등대님 등 저희 홈피의 ‘대표 지킴이’중 한분인 흰구름님이 멜로 신부님의 글을 올리신 적이 있다. 그리고 보니 옛날 여기저기서 신부님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때론 그 분 글의 행간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었고, 어떤 부분은 나와 생각이 약간 다른 적도 있었다.


진실한 행복이 의식의 경계에 들어오지 않듯이 스스로 성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교만과 독선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글이다.


우리는 언제 스스로 성스럽다고 느낄 수 있을 가?

나는 아직도 즉흥적으로 사는 편이고 별로 기억에 남게 남을 위한 선행을 해본 적도 없어 내가 나를 스스로 성스럽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그러니 이 질문이 마음에 다가 오지 않는다.  그저 상상을 해 본다면 어떤 사람들이 오랫동안 남모를 어려운 봉사나 선행을 하는 경우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넘어 일종의 우월감이나 교만함에 잠시 빠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성스러움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력으로 선행을 할 수는 있어도 선행으로 그 사람 자체가 성스러워 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씀 같지만 의도적이었던 혹은 무심코 하였건 선행을 한 적이 별로 없어 이것도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살아온 시절 몇 가지는 주님보시기 좋은 일을 했을 거라고 기대는 해 본다.


또한 선행을 하더라도 이를 통해 자신이 성스러워 지려는 그런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뜻 같다. 집착은 탐욕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 자체가 주님 보시기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헛된 욕망을 버려,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아, 선행을 하고자 구체적으로 노력조차 안 해본 것이 결과적으로 다행인가, 불행인가?  신부님 말씀은 이것도 의식하지 말라는 것 같기도 하고....  참, 아이러니이다.  하지만 내가 멜로 신부님의 경고를 받을 정도에도 못 미치게 살아온 것은 확실한 것 같아 씁쓸해진다.


좌우간 주제의 핵심은 해탈의 경지에서 자신의 그 어떤 의도성도 모두 떨쳐 버리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깨어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며, 그 이후는 모두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선행을 행하거나, 혹은 스스로 성화되기 위해 기도를 하거나 묵상을 하면서, 내면을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글이다.  우리 모두에게 깊은 기도 생활은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보석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자신이 스스로 성화되고, 나아가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이 모두 옳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특히 멜로 신부님이 말하는 의도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주제이다.  


여하튼, 동서양을 넘나드시며 여러 문제를 일으키셨던 멜로 신부님은 항상 우리 자신이 우리의 지난 간 삶을 조용히 뒤돌아보게 만드시는 분이셨다.   


이제 사순 제 4주를 보내는 지금 나는 그 어떤 교활한 ego를 가진 간교한 기술자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부디 예민하고, 생생하고, 주의 깊고, 그리고 따뜻한 ‘깨어 있음’의 은총, 그 ‘신비한 은총’이 나에게도 임하시기를 간절히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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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혹시라도 저의 주관적 해석이 멜로 신부님이 전하려는 본래의 주제를 흐리게 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되는군요. 각자 음미하시고 만약 방해가 되시면 제 글은 무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 출발천사

    예전에 친정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억지춘향\'이란 말이 정감이 가는군요.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헛된 욕망을 버려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로 살아가라는 말씀에 정신이 번뜩 듭니다. 신부님의 좋은 글에 명쾌한 해설까지 감사드립니다..

    2009-03-24 10:00:54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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