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세 번째 사순 특강은 주임 신부님의 여느 특강과 마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묵상거리를 주셨습니다. 솔직히 첫 번째, 두 번째 해제(단상)도 아직 다 정독하며 나의 마음 안에 모시지 못했는데, 덜컥 세 번째 말씀이 오고 다음 주 화요일에 또 마지막 말씀을 주실 것이라 생각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이번 강의에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은 해방의 메시지이며, 이는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체험을 하는 것이라는 신부님 말씀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세 번째 말씀을 다 정리하여 글을 올리려 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아 주임신부님의 세 번째 루가복음 해제의 글 중 일부를 여기에 소개해 올립니다. 개인 사정상 불가피하게 참석 못하신 분들께서는 꼭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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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하느님의 기쁜 소식’은 ‘해방의 메시지’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해방의 메시지를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아는 것 이상으로,
(해방의 메시지를 느끼는 것이)
그 분 말씀의 능력에 우리 스스로가 힘입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 말씀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여, 우리가 이 말씀을
‘자신들의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읽어야’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날이 해방을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오래전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지난날을 어떻게 잊으랴
행복을 생각할 수 없었고
일어날 수 없었던
눈물만을 흘렸던 지난 날
외롭고 쓸쓸하면
머나먼 고향을 생각했다.
말도 할 수 없었고
걸을 수도 없었던 지난 날
잊으려면 더욱 생각을 하게 했던 지난 날...
그러나 당신의 목소리에 나는 믿음을 되찾았습니다.
당신의 십자가 아래에서 나는 믿음을 되찾았습니다.
내 주의 발아래에서 나는 진실한 믿음을 되찾았습니다.
당신 권능의 이름으로
나는 다시 내 자신 속으로 내려 왔던 겁니다.
당신과의 대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둠의 공간 속에서
한줄기 빛 속에 당신의 오른손을 내 머리위에 얹으시고
구원해 주시며 밝은 길로 인도해 주신 당신
내 마음속엔 언제나 그날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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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찬란한 광명이 내리던 날, 1981’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 81초겨울 ‘우리만큼’] 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고,
이어서 고통에 대한 묵상과 메시지를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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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큼 사랑의 전율이 흐르는
형제는 없으리라
좌절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표정을 잃어버려
병실로 찾아와 주는 모든 사람에게 눈물로 받기고
피곤함을 무릅쓰고 오는 친구들마저
눈물을 흘리게 하고
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누나에게 웃음을 찾게 해주려고
끝없이 노력해 준 사랑의 행동에
웃음을 소생시켜 준 너
둘만이 병실 안에 있었던 그 날
누나 시작할게 하며 말하는 순간
눈길이 마주침 속에 엷은 미소를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며 뛰어와 꼭 껴안으며
누나가 웃었다, 웃었다 외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너
깊고도 깊은 사랑의 전율을 느끼게 해 주었다네
고통을 치른 사람만이 인생을 이해한다.
쉼 없는 기도 속에 평온을 얻으리라.
천국의 문에 닿을 때까지 우리의 기도는 이어져야 하리라.
주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체험했기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통회하며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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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당할 때 오히려 그 고통을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의 높은 뜻이 나타나고, 또한 고통이야말로 하느님의 축복이기 때문이지요. 고통없이 행복이 있을 수 없고 십자가의 죽음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픔’이야말로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웃음의 씨앗’이며, 절망이 아니라 희망 자체이며, 밝은 내일을 향한 오늘의 시험임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아픔을 모르는 육신, 괴로움을 겪어보지 못한 정신은 인생의 어떤 면역성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방’이란?
한 인간이 ‘죽음에서 삶으로 옮아가는 체험’입니다. 새가 알을 깨고 비상을 시도하듯 말입니다. 그래서 끝내 해방은 우리가 토마사도의 고백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체험입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메시지는 "해방의 메시지" 입니다.
그리고 이 대목의 끝에서 루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 구원과 해방의
원천이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성부이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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