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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 (연재: 3, 4)

작성자  |출발천사 작성일  |2009.03.17 조회수  |1442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공식 추도기간이 부활대축일로 끝납니다.
평화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을 굿뉴스에서 발췌하여 추모기간 동안
여기에 연재합니다.  추기경님께서 인터뷰 형식으로 지난 시절을 회고한
글입니다.
다시 한번 추기경님께서 살아 오신 진솔한 삶의 모습을 
느끼며 추기경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세번 째 이야기..............

신부되기 싫어 꾀병 부리다 진짜 축농증 걸려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예비과)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동성상업학교에 진학했다.

동성상업학교(현 동성고등학교)는 갑조(甲組)와 을조(乙組)로 편성된 5년 제였는데 갑 조는 일반 상업학교였고, 을 조는 나처럼 신부가 되려는 학생들이 다니는 소신학교였다.

전 원주 교구 장 지 학순 주교(1921~1993), 전 전주 교구 장 김 재덕 주교(1920~1988)가 입학동기다. 지 학순 주교는 도중에 결핵에 걸려 중퇴했다가 몇 년 후에 함남 덕원 신학교로 편입했다. 그 때문에 동기들 가운데 '꼴찌'로 사제 품을 받았다. 하지만 1965년 가장 먼저 주교직에 올랐다.

그 때 동기들이 그의 주교서품식장에서 "하느님 말씀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마태 20, 16)라고 하셨잖아."라면서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동성학교에 진학해서도 사제 직에 확신을 갖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시간이 좀 흐르자 '꼭 신부가 돼야 하나?' 하는 회의가 '나 같은 사람도 신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런 갈등 속에서도 공부는 그럭저럭 해 나가고, 주일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북한산에 올라가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다 내려왔다.

2학년 때였다. 대구 집에서 방학을 보내고 올라왔는데 무슨 까닭인지 다른 때보다 의욕이 더 떨어졌다. 성유스티노 신학교 시절, 집에 가고 싶어 1원짜리 동전을 갖고 꾀를 부리다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꾀병을 앓기로 마음먹었다.

담임 신부님이 아파서 누워 있는 학생에게 빵을 갖다 주는 장면도 여러 번 본 터라 이왕이면 빵도 얻어먹을 수 있는 꾀병이 좋을 것 같았다.

담임 신부님께 "머리가 몹시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기숙사에 누웠다. 그런데 신부님은 정 못 참겠으면 집에 가서 휴양을 하고 오라는 말씀은커녕 이틀이 지나도 빵조차 갖다 주지 않으셨다. 밖에서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도 한낮에 꾀병으로 누워 있는 '가짜환자'의 마음을 괴롭혔다. 이번에도 실패한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서 공부해야 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는데 옆에 누워 있는 선배가 내 병세를 꼬치꼬치 캐묻더니 축농증이라는 진단을 내려 주었다.

축농증? 난생 처음 듣는 병명이지만 그럴듯한 병명을 하나쯤 대고 싶었던 터라 신부님께 가서 "저는 축농증에 걸렸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신부님은 "축농증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무르시길 래 선배한테 주워들은 증상을 자세히 댔다.

곧바로 신부님이 소개해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진짜 축농증이었다. 그 바람에 수술까지 받고 한 학기를 쉬게 됐다. 같은 교정에서 공부하는 상급 반 동한 형에게는 혼이 날까 봐 신부되기 싫어 꾀병을 부렸다는 얘기를 차마 꺼내지 못했다.

3학년에 올라가서는 어느 정도 마음을 잡았다. 꾀병 때문에 뒤진 한 학기 공부를 만회하느라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공부에 탄력이 붙었다. 그 전에는 도서관에서 주로 소설책을 뽑아 읽었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게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다 헤어지고, 때로는 삼각관계에 빠지는 내용이 대부분이라 얼마 안 가 흥미를 잃었다.

반대로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성인 전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사실 도서관에 더 이상 읽을 소설책이 없어 빼든 성인전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이 솟았다.

돈 보스코 성인과 소화 데레사 성녀 일대기를 그 때 읽었다. 특히 소화 데레사 성녀 일대기는 소설에서 느껴 보지 못한 뜨거운 감동을 안겨 주었다. 지금도 소화 데레사 성녀의 이 말씀을 기억한다.

"하느님은 미미한 존재를 통해서도 당신의 사랑을 충분히 드러내는 분입니다… 기쁨과 고통 등 모든 것이 사실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내게 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열심한 성인 얘기 일색이라고 쳐다보지도 않던 성인 전에서 영적 뜨거움을 느끼고, 모든 게 하느님 사랑으로 귀착되는 섭리에 조금씩 눈을 떠갔다. 한마디로 말해 하느님께 기울고 있었다.

신앙적 순수함 때문인지 3학년 때는 소위 '세심병(細心病)'이란 걸 앓았다. 죄 같지도 않은 죄까지 꼬치꼬치 고해 신부님께 고백해야 마음이 편한 결벽증 같은 증세말이다.

심지어 고해성사를 보고 나오는데 미처 말씀 드리지 못한 죄가 생각나서 다시 돌아가 "아까 ○○죄를 빠트렸습니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같은 우스꽝스런 행동을 몇 번 되풀이하자 고해신부님이셨던 프랑스 출신의 공 신부님은 "너, 자꾸 그러면 신부가 될 수 없다"라고 타이르셨다.

세심병이 깊어지자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영혼을 구제하는 신부가 될 자격이 없다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사제 직에 대한 열망도 없이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신학교에 온 사람이 무슨 신부가 된단 말인가.

어느 날 심호흡을 크게 하고 공 신부님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만 신학교에서 나가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말씀 드렸다. <계속>

[평화신문, 제726호(2003년 6월 1일),김원철 기자][편집 : 원 요아킴] 



------  네번째 이야기  --------------------------------

.....................    †    .......................

시험답지에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담임이었던 공 신부님께 신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씀 드린 이유는 '도둑'이 되기 싫어서였다. 사건의 발단은 공 신부님 강론이었다.

공 신부님은 미사 강론 중에 '착한 목자'(요한 10, 7-21)의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서에 나와 있듯이, 양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이다. 도둑은 양을 훔쳐다가 죽이려고 울타리를 넘는다. 하지만 양치는 목자는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 너희들 중에도 이런 도둑같은 심보를 갖고 신학교에 온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녀석은 지금이라도 보따리를 싸는 게 낫다."

공 신부님이 나를 지목해서 말씀 하신 게 틀림없었다. 신부님은 고해성사 때 "자꾸 그러면 신부가 될 수 없다"라고 몇 차례나 주의를 주었다. 또 내가 어머니한테 등 떠 밀려서 신학교에 들어오고, 집에 가고 싶어 꾀병을 부린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직접 말씀은 못하시고 강론시간에 에둘러서 '너 같은 녀석은 일찌감치 다른 길 찾는 게 좋다'라고 충고하시는 줄 알았다.

신부님 말씀을 듣고 나니 양을 훔치려고 우리를 넘는 도둑이나 신부가 될 생각도 없이 신학교 교문을 들어선 나나 별반 다를 게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신부님께 이런저런 이유로 신학교에서 나가겠다고 말씀 드렸다. 신부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셨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신부란 자기가 되고 싶다고 되고, 되기 싫다고 안 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저는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나가!" "… …어디로 나가란 말씀인지?" "어디 긴 어디야. 내 방에서 당장 나가."

일반 상업학교 과정을 밟는 갑 조(甲組) 학생들과는 교련수업을 같이 하는 정도였지 별 교류는 없었다. 지금 은퇴해서 분당에 살고 있는 나 상조(아우구스티노) 신부는 그 당시 갑 조 학생이었는데 학교 대대장을 맡을 정도로 소문난 수재였다. 신자가 아니었던 그는 일반 대학에 진학한 후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와 사제가 된 경우다.

갑 조 선생님들은 신학생반인 을 조(乙組) 수업에 들어오면 신부님들과 달리 3.1 운동, 일제 식민통치 만행 등 민족혼을 일깨워 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선생님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피가 역류하는 듯 울분이 치밀고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럴 때는 신학생이 아니라 나라를 빼앗겨 신음하는 백성이었다.

선생님들이 조국애를 부추긴 건지, 아니면 정의감이 부쩍 자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제에 대한 울분이 치솟을 때마다 그 심정을 일기장에 토해놓곤 했다. 서랍에 넣어둔 그 일기장을 들켜 교장 신부님께 불려 가서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도있다.

그 무렵 동한 형과 북한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그 때 일본에 빼앗긴 조국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동한 형은 "너는 신부가 될 거니? 아니면 독립운동가가 될 거니?"라며 걱정스럽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 안에서는 이미 독립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시간에 그 전쟁이 밖으로까지 비화(飛火)되고 말았다.

5학년 졸업반 수신(修身, 지금의 윤리)과목 시험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소크라테스 철학에 관한 것이라 우리는 당연히 그와 관련된 문제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조선반도의 청소년 학도에게 보내는 일본천황의 칙유(勅諭)를 받은 황국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문제가 나왔다.

아마도 조선총독부가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전 학교에서 그같은 시험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던 모양이다.

순간 민족적 자존심과 젊은 혈기의 반항심이 엇갈렸다.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다 가 마침 종이 울릴 무렵 답지에 이름을 쓰고 빈 난에 "①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②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어린 나이에 뭘 믿고 그런 배짱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예상한대로 이튿날 교장 신부님으로부터 호출명령이 떨어졌다.

"이거 네가 쓴 것 맞아?" "네." "어쩌려고 이런 답안을 썼느냐?. 이게 밖에 알려지면 학교는 그 날로 문 닫아야 하고, 너는 감옥에 가고, 교회는 또 박해를 받는다는 걸 모르느냐?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럼 그 답지를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면 되잖습니까?." "이 녀석이, 어른 말 안 듣고 어디서 말대꾸야!"

교장 신부님한테 말대꾸한다고 따귀를 한대 얻어 맞았다. 교장 신부님은 이어 "너는 위험해서 신부가 되면 안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교장 신부님 입에서 그런 말씀이 나왔으니 이젠 정말 끝 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여름방학이 되어 대구로 내려갔다. 학교로 돌아오지 말라는 기별, 즉 퇴학통지서가 날아오리라고 예상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방학을 끝내고 돌아와 그럭저럭 지내다 졸업을 두어 달쯤 남겨 두었을 때 우리 교구 주교님(대구대목구 무세 주교)이 신학교를 방문하셨다. 마당에서 서성거리다 교장 신부님이 주교님 계신 방으로 바삐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교장 신부님이 분명히 나에 대한 얘기를 하실 테고, 그러면 정말 쫓겨나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주교님이 나를 부르셨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주교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얼토당토않은 명령이신가.

"스테파노. 여기 졸업하면 일본으로 가라. 거기서 공부를 더 하고 오너라."
<계속>

[평화신문, 제727호(2003년 6월 8일),김원철 기자]
[편집 : 원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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