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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 당신께서 사랑하신 사람들....

작성자  |nittany 작성일  |2009.02.21 조회수  |1408

 

 스테파노, 당신께서 사랑하신 사람들...




   지난 수요일 밤 명동 언덕은 칼바람이 부는 참 추운 밤이었다. 화요일 새벽부터 늘어선 기나긴 추모 행렬이 수요일 밤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명동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조문객들을 한 줄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인 다른 형제들은 성당 밖에서 안내하며 떨고 있을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험한 일은 가끔 피해 간다. 

그날 밤도 3시간 넘게 추위에 떨며 꽁꽁 언 얼굴로 성전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안으로 안내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차분히 보았다.  모두 다 정말로 평범한 옷차림,  험난한 인생의 역경이 드러나는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허접한 나무 지팡이, 길거리 리어커에서 샀을 싸구려 목도리,....

이 모든 모습들을 보며, 아 그래...하느님께서 우리 추기경의 사랑을 이 어려운 분들이 진실로 느끼게 하셨구나. 기적을 결국은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셨구나... 하는 생각에 목이 메어왔다. 

 

그렇다... 추기경님은 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재산을 주체 못해서 자기 재산을 어떻게 하면 자자손손 대를 이어 온전히 넘겨줄 수 있나 하는 그런 걱정만 사람들보다, 항상 춥고 어두운 저 아래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신 분이셨다. 


내가 목도한 그 많고 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관에 누워 계신 추기경님과 그 추운 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걷고 또 걸었던 것이다. 그렇게 춥고 아름다운 명동의 밤은 그렇게 한없이 깊어 갔다. 
....................

 

수요일 오후,  명동의 추모 행렬이 가톨릭회관을 돌아 계성학교 담을 타고 남산쪽으로 명동역, 다시 신세계 건너편 중앙우체국, 그리고 다시 명동시내로 휘감아 들어가자 명동성당의 상황실은 분주해 지고 비상이 걸렸다.  혹시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이 많은 추도 인파를 다른 방법으로라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신자들이 들어갈 연도 장소를 늘리고... 위령미사 장소도 여러 곳으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명동 꼬스트홀 이층 강당은 꽤 커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 모든 미사도 가능한 짧게 줄여서 진행되었다.

명동성당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우리 신부님께 왔고 오후부터 한강성당의 해설단이 비상 소집되었다.   그 후 목요일 밤까지 해설, 독서 2인 1조가 되어 차분히 진행할 수 있어 참  다행 이었다. 


목요일, 거의 30분마다 계속되는 미사가 여섯, 일곱 대 정신없이 지나갔다. 지금 다시 생각을 떠올리려 해도, 어떤 신부님이 몇 번째 어떤 미사를 집전 하셨던가 헷갈린다. 하지만 여러 미사 중 가장 연세 드신 임신부님 강론 말씀이 마음에 남는다.


약 40년 전 일이라 한다.  임신부님 연세가 이제 칠십에 가까워지는데, 당시에 추기경님께서는 막 추기경님이 되셨을 때이고 임신부님은 보좌신부로서 비서 역할도 하셨다 한다.  언젠가 추기경님의 교도소 방문을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추기경님께서 수의를 입고 있던 죄수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여러분은...여러분의 죄가 온 세상에 드러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 죄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일 뿐입니다.” 
추기경님께서 교도소까지 직접 오셔서 수인들에게 당신과 나는 같은 죄인이다.....하셨으니, 그 죄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당신의 그 겸손과 그 사람들에 대한 사랑, 죄는 지었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그 마음에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고 한다. 임신부님은 그 후 40년, 사제의 길을 걸으며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그 말씀을 평생 마음에 간직하며 사셨다고 한다.
.........


 금요일, 추기경님이 이제는 정든 명동성당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용인 성직자묘지로 향하는 차안에서 우리 일행들은 정진석 추기경님의 미사 강론을 듣는다. 10시 반쯤 묘지에 도착하니 일꾼들이 미리 파 놓은 봉분, 빨간 흙들이 가지런히 단장되어 있다. 제대를 차리고, 초의 포장을 급히 뜯고, 불도 미리 붙여놓고... 향불을 붙여야 하는데... 전기를 끌어 올 전선이 없어 우왕좌왕 한다. 

명동에서 추기경님 장례미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이 장지로 찾아든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딸과 함께 아침 일찍 인천에서 왔다는 어떤 아주머니, 그리고 수녀님들....그 모든 사람들을 찬찬히 보니 모두 참 평범하고, 더러는 행색이 어려워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방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이 이른 아침에 성직자 묘지 안에서도 외진 이곳을 어떻게 찾아 걸어 왔을까?  참으로 감동적이다. 명동성당에서 추기경님의 운구차가 장지를 향해 출발하였다는 소식이 도달하자, 매서운 추위 속에서 모두 마음을 합쳐 연도와 성가를 바친다. 

  지난 몇일 명동 밤에 일어났던 기적이.. 추기경님 마지막 가시는 길... 그 순간에도 장지에서..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함께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를 바치는 가운데, 추기경님의 관이 땅밑으로 천천이 안장된다. 정 추기경님, 대주교님, 주교님, 그리고 친척들이 한분씩 나오셔서 흙을 뿌린다. 
참으로 작고 소박한 무덤이다. 모두의 애절한 애도속에 하관예절이 마감된다.


장지를 걸어 내려 오는데,

 나는 참 많이 사랑 받았다 하시며....

"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 하세요. 그리고 용서하세요 ” 하시며 남기신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이 다시 나의 마음을 울린다.


스테파노 추기경님,
하느님 품에서 부디 행복하소서...............



 


     


  • 동그라미

    추위에 고생하신 봉사자님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은혜로운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보면서 마음을 재 정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해지는 것 같군요. 하느님의 축복이!!!

    2009-02-21 15:00:26 삭제
  • 출발천사

    제1지구장 신부님으로 장례위원으로 큰일 치루어 내신 주임 신부님과 총회장님을 비롯하여 남성안내 봉사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성꾸리아 단원 여러자매님들께서도 안내 봉사와 독서, 해설을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렵고 큰일이 생겼을때 한마음이 되어 봉사하는 가톨릭 신자임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주님! 모든 이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2009-02-21 21:00:17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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