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괴성모성지 vs 신세계 프리미엄 아웃렛
긴 겨울 방학 동안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는 어떤 분이 어느 날 갑자기 강원도 여주 근처인가에 신세계에서 무슨 몰(mall)을 만들었는데, 거기로 바람 쐬러 가야겠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뉴욕 등 대도시 유명한 아웃렛과 몰은 거의 다 가본 사람이 그런데는 왜 가려하느냐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확 올라오는 걸 꾹 참았지요. 분위기로 봐서 어찌 됐든 가긴 가야 할 것 같은 데, 이럴 때는 괜히 토를 다는 것보다는 흔쾌히 가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전에 다른 사고 친 것도 해결하고 또 다음에 언제든 써먹을 수도 있습니다. 다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요.
"아, 그래... 나도 못 가보았는데... 정말 잘되었네.." 하며 기분을 맞추었습니다.
분위기를 잡는다며 고속도로를 안타고 춘천 방향으로 잘못 가다, 어찌 어찌 국도를 돌고 돌아 점심 먹고 거의 여주 근처에 다 왔는데, 이상한 고속도로 같은 것이 다시 나오고 두 갈래 길이 보였습니다.
이 분은 왼쪽으로 저는 오른쪽으로 가자며 의견이 갈렸습니다. 저는 두 말 않고 무조건 왼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자는 데로 가야지요. 그래야 혹시 길이 틀려도 그 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걸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때문이지요.
얼마 안가서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 말씀, 아... 틀린 걸 처음부터 알았는데, 이렇게 가야 나중에 돌아올 때 시골길도 보고 좋을 것 같아서 왼쪽으로 가자고 한 거랍니다....
허참...
하지만, 저 말없이 참았습니다.
그런데 길에 다음 사인이 나오는데 12킬로를 가야 돌아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왕복 25킬로..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저는 그냥 침묵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제가 제대로 한번 시작하면. 그 때는 차안에서 한 판하고 막바로 서울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거든요.
사실 저도 한 성질 합니다. 더구나 운전대도 제가 잡은 상태이고.....
그런데 한참을 가니 갑자기 감곡 이정표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 여기에 매괴성모성지가 있지...” 우리는 동시에 흥분했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인내에 대한 보답을 이렇게 해 주시는구나. 아, 역시 나를 이곳으로 이끄시려고 나를 참게 하셨구나.......”
저는 제 마음대로 갖다 붙이며.... 기분이 무지 좋아졌습니다.
성지에 도착하여 차 세우고, 성당에서 묵상하고, 촛불 봉헌 올리고 또 기도드리고.., 박물관까지 보고 나오며 아니, 수녀님을 어찌 이리도 많이 배출하셨나 싶어 놀라고...
초대 가를로 신부님께서 신으셨던 다 헤어진 구두를 보고 그 옛날 고생하심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수난 받으신 성모님께 인사하고 나오는 길에 성물방에 들렸는데... 이 분이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며 무언 가를 몇 개 사길래, 저는 김웅렬 신부님 책을 집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에 천지가 책이라 복잡한데 왜 책을 또 사냐고 나무래는 겁니다.
저, 아무 말 않고 그냥 내려놓았습니다....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런데 사실은 바로 그 순간에 “그래, 이걸 조용히 포기하고 나중에 쇼핑몰에 가서 뭔가 하나라도 건지자...” 하는 생각이 정말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갑니다.
이런 능력도 정말로 타고난 특별한 은총인 것 같습니다.
자판기 커피 뽑아 마시며 드디어 몰에 도착했습니다. 각자 흩어져 몇 개 매장을 보고 나니 정말로 별로 볼 것이 없더군요. 이분, 길 막히기 전에 집에 빨리 가자고 합니다.
이번 목적은 바람 쐬는 것이지 쇼핑이 아니다 하며 저에게 정확히 지침을 내립니다.
저는 아까 저기에.. 뭐 하나 괜찮은 것 있던데.... 하며 들어가는 목소리로 운을 띄웁니다. 그런데. 뭐냐고 대답하는 말투가 아주 별로입니다.
아, 신부님이 좋아하실 디자인에 검정색 계통인데. 그동안 연락 못한 신부님 생각이 났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누구입니까.
제가 신부님을 위해 정성들여 설득하며 선물을 다시 보러갈 사람이 아닌 것도 잘 알고 있고....
응, 그 사이 자기 것 뭐 하나 점찍어 두었구나....
하고 이미 눈치로 알아채고 따라옵니다.
거의 귀신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참을만큼 참았는데, 이것 하나는 꼭 건져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샾으로 데리고,아니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그래, 이것 봐라... 가격도 브랜드에 비해 무난하고.. 디자인도 정말 좋고... 한참을 떠드는데,,..
이분...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사실 저는 샾에서 그냥 마음에 드는 무얼 집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가장 비싼 것을 집습니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그러니 샾 카운터에 있는 친구는 이 분 눈치만 보고... 저는 완전히 백수로 보는 겁니다.
내 참, 창피해서... 내가 내 지갑을 잘 챙겨 나왔어야 했는데....
하지만 끝까지 참아야지요.... 여태껏 잘도 참았는데........
잠시 후 이 분 드디어 지갑에서 카드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요......
계산 다 마치고 물건을 포장하려는 데, 이 분께서 반코트 안감 재봉질이 두 뼘 정도 뜯어진 걸 귀신같이 발견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새 물건인데 말이 안 된다며 값을 10% 더 깎자는 겁니다.
샾 마스터가 다 나오고, 내 참 창피해서....
완전히 고쳐서 집에 배달해 준다고 해도 무조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분, 2,3주안에 친구 하고 여기 다시 오니, 그 때까지 생각이 바뀌면 자기에게 전화하라며 샾에 전화번호 주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여기가 어딘데, 오긴 뭘와...
자식. 바보같이.... 포장을 그냥 잽싸게 할 것이지...'
저는 어리버리한 종업원만 원망하며 빈손으로 샾을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 이 분 표정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아, 성모님... 그럼 저는 오늘 도대체 무엇때문에 옷하나도 못건지고 하루 종일 참고 또 참았단 말입니까? "
그 후 몇 주 지나... 그날의 기억을 거의 다 잊을 무렵,
어느날 이주형 신부님의 글을 굿뉴스에서 보았습니다.
정말로 우연히 본 것이 더 이상합니다. 그런데 매괴성모성지 이야기가 나오고...
신부님 글을 보니, 신부님 대학 시절 이야기가 제 아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멀리 있는 아들놈 생각이 나고. 갑자기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요즘 꽤 오랫동안 미사 안 빠지고 잘 나가냐고 전화도 못했는데.....
“아, 신부님 글을 보게 하려고. 그래서.. 바로 거기서 내가 길을 잃게 만드셨나?”
아들에게 정말 오랜만에 긴 통화를 할 기회를 주신.
성모님께 먼저 감사기도 올립니다.....
다음에 아들이 오면 "파티마의 성모님" 비디오를 강제로라도 보게하고
언젠가 메주고리에도 꼭 데리고 갈 겁니다.
이 신부님께도 영육 간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름다운 사제님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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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참, 결국 신세계 샾에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모르지요.전화가 왔는데, 이분께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둘러서 대답했는지...
아, 디자인이 정말 괜찮았는데... 그런데 아무리 봐도 쇼핑하는 패턴은 제 딸이
저를 빼 닯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