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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속에 들어 있는 천국 -- 강길웅 신부님의 묵상

작성자  |nittany 작성일  |2009.02.10 조회수  |1902

 


                               가난 속에 들어 있는 천국


 


   몇 해 전의 일이다. 과천에 있는 성모영보수녀원에 볼일이 있어서 광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렸더니 마침 진눈깨비가 심하게 뿌려지고 있었다. 그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겨울 날씨치고는 아주 음산한 2월이었다.


   김포에서 과천까지는 가는 길이 좀 불편했다. 공항버스로 당산역까지 가서 전철로 갈아타고는 사당역까지 갔다가 사당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과천의 문원동까지 가는 데 대체로 한 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다행히 그 날은 아는 자매들이 승용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는데 그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도로는 곳곳마다 이미 정체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흩날리는 진눈깨비로 시야마저 흐려진데다가 노면 자체가 미끄럽기 때문에 모든 차량들이 전진을 못하고 있었으며 엉금엉금 기어가다 보니 목적지까지 무려 3시간 이상이나 소요되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날씨 때문에 우리는 무척 당황하게 되었다.


   늦은 오후였기에 부인들은 가정에서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도로에 갇혀 있는 자매들을 보자니까 내 쪽에서 너무 미안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료함도 달랠 겸 신앙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내가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모두는 너나없이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았는데 자매님들이 받은 은혜 중에서 가장 큰 것을 서로 나눠 보자고 했더니 세 명의 자매가 갑자기 긴장을 하더니만 선뜻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억지로 지명을 하자 그때 비로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일 번 타자는 내 옆에서 운전대를 잡은 곱살하게 생긴 여인이었다. 그녀가 내 눈치를 흘깃 보더니만, 자기는 남편을 잘 만난 것이 자기 생애에 주어진 가장 큰 은혜라고 했다. 남편이 경제력도 있고 성당에도 열심일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아내를 늘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참으로 좋은 남편이었다.


   이 번 타자는 바로 내 뒤에 앉은 자매였다. 그녀가 내 등받이를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자기는 좋은 아들을 주신 것이 가장 큰 은혜라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녀의 아들이 그때 막 서울대학에 들어갔는데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자매의 얼굴에서 아들 복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마지막 삼 번 타자는 뒷좌석 왼쪽에 앉은 자매였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 차례가 되어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이 부끄러운지 얼굴만 붉히다가 계속되는 재촉에 못 이겨 겨우 입을 열었는데 모기 소리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 안을 온통 긴장 시켰다.


   자기는 남편복도 없고 자식복도 없으며 그저 있다면 하느님을 믿는 복밖에 없다면서 웃었는데 내용을 듣고 보니 사정이 딱한 여자였다. 남편은 실업자에 주정뱅이였고 나이 어린 딸은 정신 장애인이었으며 그리고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공부도 못하면서 말썽만 피우는 문제아였다.


   세상 어디를 둘러 봐도 희망이 없고 기쁨을 찾을 데가 없는 여인이었다. 오로지 붙잡은 것이라고는  하느님밖에 없는, 막말로 팔자가 사나운 여자였다. 그래도 자기는 하느님을 믿는 복 때문에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에 우리는 어떤 말할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을 받게 되었다. 한마디로 쇼크였다.


   우리는 과연 믿는 이로서 하느님 믿는 복을 그녀처럼 자랑할 수 있는가. 많은 이들에게 대답은 부정적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별 필요도 없는 복(?)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것들 때문에 눈멀어 보질 못하고 귀  멀어 듣지를 못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우리 자신을 털지 못하는 변명은 또 얼마나 많은지….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라고 하지만 정말 가난의 행복을 누리는 크리스챤은 몇이나 되며, “마음을 비워라”하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마음을 비운 불자들은 또 몇이나 될까. 그렇다! 우리는 가난의 행복을 얻기에는 너무도 가진 것이 많으며, 마음을 비우기에는 너무도 세상에 집착해 있다.


   얼마 전에 소록도의 환우 한 분이 돌아가셨다. 내가 부임한 이후 벌써 열일곱 번째다. 그런데 열일곱 분이 모두 비슷했다. 자신이 가졌던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이웃을 위해 쓰라고 다 내놓고 가신 것이다. 심지어는 화장터에 일꾼과 연도 바치는 신자들에게까지 일일이 다 인사를 챙기고는 나머지는 다 교회에 바치고 가셨다.


   나병 때문에 평생을 소록도에 갇혀 지내셨던 분들, 나라와 교회에서 쥐꼬리만 한  것을 용돈이라고 드리면 당신들이 쓰기에는 그것이 아까워서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이웃에게 다 내놓고 가시는 분들, 그러나 빈손으로 와서 다시 빈손으로 가시지만 그 손에는 세상이 통째로 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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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저번에 이어 강길웅 신부님 글을 모셔다 올립니다. 나에게는 별 필요도 없는 복이 무엇인가... 별 필요도 없는 그 무엇에 매달려 살고 있나 생각해 봅니다. 

  • 출발천사

    행복은 많이 가진 재물에 비례하지 않는 듯합니다. 저 오지의 나라 네팔 사람들, 잘 살지 못하지만 행복지수가 1위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 이루지 못한 꿈을 제딸에게서 보상받으려는 마음이 있어서 아이를 불편하게 하고는 제풀에 지쳐 의기소침해 지곤 한답니다. 지난 주일 주임신부님 강론말씀에서 \"자녀들이 권력이나 명예를 좆아 살게 하지 않는 부모가 참 부모\" 라는 말씀 마음에 와 닿았답니다.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살며 따뜻한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기도 하렵니다..^^*

    2009-02-10 21:00:35 삭제
  • 나누미

    난 참 복도 많은 사람이구나. 그럼에도 불평을 하다니...참 욕심도 많은 사람이구나.
    더 많이 내려놓고 더 많이 나누어야 겠구나.
    주님, 또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2009-02-14 11:00:2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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