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집을 나갔어요. 추석 전날 문을 열고 음식을 하느라고 바빴고, 추석 당일은 시골에 다녀오느라 몰랐고, 추석 다음 날에야 우리 고양이가 집을 나간 것을 알았어요. ㅠㅠ. 위의 그림처럼 예쁜 우리 고양이 이름은 ‘허니’예요. 물지도 않고 할퀴지도 않고, ‘허니야~!’하고 부르면 살포시 다가와 부드럽게 안긴답니다. 너무나 예쁜 고양이에요. 우리는 허니를 막내딸처럼 너무 예쁘게 키워 허니 없으면 못 살아요. 혹시 ‘도둑고양이 아닌가?’ 아니면, ‘집을 잃었나?’ 하고 ‘아, 예쁘다!’ 하면서 집에 데려다 놓으셨다면, 저희 집으로 꼭 돌려 보내주세요...ㅠㅠ 연락처: XXX-XXXX."
지난 가을 추석 연휴가 끝나 출근을 하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 벽에 예쁜 고양이 사진 한 장과 함께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붙어있었다.
‘아이고, 조심 좀 하지. 어쩌자고 이틀씩이나 집 나간 것을 몰랐담! 그것 참 찾기 참 힘들겠는 걸.’하며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면서 얼마 전 우리 집 강아지도 집을 나가, 막막하고 황량하여 어쩔 줄 몰라 했던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우리는 강아지가 집을 나가자마자 바로 알아서, 금방 찾아 데려올 수 있었지만 말이다.
고양이를 잃은 집에서는 경비실에 연락하여 CCTV 녹화내용도 들여다보았다는데, 그 고양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와 문이 스르르 열리자 아파트 밖으로 유유히 사라지더라 했다.주민들이 “고양이 혹시 돌아왔대요?” 하고 궁금해 하면 “고양이는 귀소 본능이 있는 동물이므로 언젠가는 꼭 돌아올 거예요.”하며 경비실 근무자들이 얘기한다지만,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들도 길을 헤매기 일쑤인 이 아파트촌에서 집나간 고양이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막내딸처럼 예쁘고 소중히 키웠다는데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할까, 충분히 동정이 갔다. 허전한 상실감과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고양이에 대한 애처로운 생각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두 번이나 없어졌다 찾은 우리 집 강아지의 이름은 ‘블레스(Bless)’이다. 얼마 전 이 ‘블레스’가 갑자기 밥도 안 먹고, 우울증에 걸린 듯, 그렇게 좋아하던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줘도 못 본 체, 이웃집에서 강아지에게 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보내 준 사료용 고기도 본체만체… 그렇게 사흘을 보내면서 오로지 물만 마시고 소변을 수돗물처럼 쏟아내기만 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축 늘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나갔다 들어가면 뛰어오르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곤 하였으므로 ‘곧 나아질거야.’ 했는데, 4일째 되는 날은 아예 축 늘어진 강아지를 보다 못한 딸애가 강아지를 무작정 안고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찰 결과는 암캐들에 흔한 병으로 보통 5~6년차에 잘 걸리는 자궁복수현상으로 자궁에 고름이 가득 차 있어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했다. “수술비가 꽤 많이 든다는데…”하고 아내가 자초지종을 전화로 알려왔기에, “그 돈이면 새로 한 마리 사서 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했다가, “당신 지금 그걸 말이라고 어떻게 그리……??!! 그동안 우리에게 얼마나 충실하고 기쁨을 줬던 강아지인데…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리…… 아휴, 아휴!” 나는 더 이상 무어라고 대꾸했다가는 아주 냉혈한으로 몰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럼 그냥 좋을 대로 하구려.” 하며 물러섰지만, ‘무슨 강아지 수술비가 새 강아지 값만큼 많이 드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어린 강아지를 다시 기르고 가르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비록 미물이나 그를 가엾이 여기고 돌봐주는 식구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도 값진 일이다’ 싶어 수술치료를 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날 밤 동물병원을 찾아, 마취가 아직 덜 깬 채 크게 뜬 동그란 눈망울을 두리번거리며 배에 붕대를 잔뜩 두르고 앉아있는 귀여운 모습을 보며, ‘휴~ 살리길 잘했다. 그래 그렇게 한 6-7년 더 건강히 잘 살아봐.’ 했다.
동물 생명체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강아지나 고양이들을 자식처럼, 친구처럼 아끼고 돌봐주며, 없어지면 애처롭게 찾아 헤매고, 돌아올 때까지 침식을 잊을 정도로 슬퍼한다. 애완동물 생명들을 이렇게 아끼고 사랑할 때, 사람 생명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여러 가지로 보여주는 귀여운 행위도 사실은 조건반사행위일 뿐이라고 배웠는데, 그 몇 가지의 귀여운 행위만으로도 우리의 혼을 다 빼놓는다.
이와 비해 사람의 생명은 육체적 본능의 차원을 넘어 신령한 생각, 정신, 지성, 의지, 감성, 정서, 심리 등 온갖 차원을 아우르는 입체적, 영적 존재로서, 모든 생물들과 우주를 다스리고, 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존재이므로, 동물들과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가톨릭대학교 철학과 신승환 교수는 이를 생물학적 생명과 인간적, 의미론적 생명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인간적, 의미론적 생명은 생리학적 영역, 자연과학적 원리를 넘어, 역사적, 정신적 존재로 이해해야한다고 했다. 초월적 존재에 대해 맹목적, 과학적 지식만으로 접근하려하는 것은, 얼마 전 크게 소란을 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예에서 보듯, 수많은 오류와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시작과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에만, 초월적 존재의 생명 신비, 그 존엄성과 영적인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최근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에서는 12월 첫 주일을 ‘생명수호주일’로 제정하였다고 들었다. 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염수정주교님이 취임하셨고, 이 위원회에서 생명문제를 전담하면서 생명수호의식의 확산을 위해 활동하리라 한다. 미국 성당에서처럼 각 본당에 생명수호위원회 또는 생명수호 코디네이터를 두고, 각 성당에서 각종 모임, 특강, 피정을 통해 교육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해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임산부들을 돕고, 낙태 유혹을 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바른 길을 상담해주며, 나아가 말기 환자, 장애인, 사형수 등을 돌보는 일에 적극 나서리라 한다. 나아가 한국주교회의에서 나오는 각종 생명 자료와 지침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연구할 것이라 한다. 늦은 감은 있으나, 우리 서울대교구에서 이렇게 생명수호운동에 앞장서게 된 것은 참으로 반갑고 다행한 일이다.
고양이나 강아지들에 있어서는 의미 있는 삶 또는 역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 초월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생명을 살며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 존재는, 고양이나 강아지들과 비교할 수 없는 보석같이 찬란히 빛나는 존재이다. 잉태된 지 3주 만에 심장이 뛰고 척추가 생기며 신경줄과 뇌세포가 연결되기 시작하는 이 위대한 영적 존재에 대하여, 한국의 모든 젊은 부부들이, 아니 모든 관련 지도자들이 생명 수호의 정신을 넘어 생명 사랑의 정신으로, 태중에 아기가 시작된 첫 순간부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랑과 기타 모든 것을 베풀면서 다가갈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