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와 박토의 차이...
단어를 놓고 보면 분명 차이는 있지만..신앙적으로 보면 그리 괴리가 있어 보이지는 않다
당연히 옥토는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며 옥토를 소유하기 위해 갖은 수고를 마다 하지 않는다...한편, 박토는 외면 당하고 그 값 역시 아주 저렴하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 두 가지의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우리의 여정에 많은 연관이 있다.
두 가지를 살펴 본다면...,
옥토가 영원히 옥토일 수 없고, 박토 또한 영원히 박토만으로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옥토가 소유한 사람에 따라 잘 보호되지 않고 함부로 사용되거나 버려진다면 아니, 관심 밖에 것으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서서이 박토가 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는 반면, 박토가 소유한 사람에게 보호되어 잘 가꾸어 지며 아주 특별한 관심하에,
관리 되어 진다면 분명, 서서이 옥토로 변해 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신앙의 의미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때론 나도 모르는 사이 박토의 삶을 살기도 하고 옥토의 삶에 와 있기도 한다
내가 세상 부나 명예나 권력에 눈이 어두워 한없이 세상에 맛들여져 살아 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메마른 박토안에서 사는 것이며, 그곳이 박토임 자체도 알지 못하였다
나는 겉으로는 행복하고 기쁜 것 같았지만, 안으로는 심한 갈증과 허기로 앓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갖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좌절의 삶을 반복하고 살고 있었다.
메마른 땅에서는 풀 한 포기도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든, 어느 날 나는 옥토를 그리며,그 곳을 열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옥토를 들어 가기 위하여 나는 내가 해야 할 작업을 시작 한다
나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반성하며 나 자신을 깊이 묵상하고 정화하여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할 때, 한없는 기쁨과 행복과 감사와 자유를 느끼며 무한한 내적인 힘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그 분께서 주시는 축복과 은총으로 만 옥토에 들어 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박토에서 살아 보지 못한 사람은,..
옥토의 기름짐도 소중함도, 모를 것이며..
옥토에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박토의 매 마름도 알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경험한 박토의 삶이 없었다면 난 하느님을 찾지도, 그 분을 그리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고통이야 말로 진정 하느님의 초대였음을 많은 세월을 보내고 나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끝자락에서 자신을 되짚어 보니, 박토의 삶을 잘 참아주고 인내 해준
내안의 또 다른 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여정에서, 나를 성장 시키고 깨닫게 하기 위하여, 옥토도 박토도 내게는 소중한 땅으로 간직되어 그 분의 뜻에 의하여 각기 다른 메시지로 수 없이 나를 경험하게 할 것이며,
그 때마다 그 분 가까이에서 수 많은 선택을 하면서 그 분과 함께 내 여정을 걸어 갈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 땅에서 살고 있는가?
어떤 땅에서 살고 싶어 하는가?
잠시 묵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