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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고속도로

작성자  |희망의발걸음 작성일  |2014.03.06 조회수  |1250

제목 : 죽음의 고속도로

 

지금으로부터 5년전 사건이다.

 

오래전부터 자주 안부를 전하고 있는 신부님은 사회복지법인을 시골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한때 전라북도 순창군에 위치하고 있는 장애인시설에서 근무를 하였다.

 

순창은 전형적인 시골로써 인구는 약 5만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주로 농사와 부가가치가 높은 불루베리 친환경 열매가 지역경제에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

 

특히 순창군은 청정지역을 자랑하고 있어 냇가에는 물고기와 우렁이 넘쳐나고

1급수에서 서식하는 빠가사리(쉬리)가 서식하고 있다.

 

가을에는 주변의 나무들이 총천연색 물감을 뿌려 놓은듯한 아름다운 수체화 그림이 펼쳐져 있으며

 

겨울에는 어른들도 걷기 힘들 정도의 많은 눈이 내리고 처마밑에는 성인의 팔둑만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긴 막대기로 휘저으면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아스팔트위에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이와 반면 거대한 도시 서울은 인구밀도가 높은 물리적인 환경속에서 바쁘고 어지럽게 생활하고 있어 드넒은 평야와 오염되지 않는 청정환경 그리고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농촌지역과 대비되고 있다.

 

그래서 복잡한 도시를 떠나 정책적으로 혹은 개인적인 생각에 의해서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골을 선택해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

 

2009년 추석이였다.

 

추석과 설날을 공식적 행사로 지정하여 고유명절을 시설내에서 장애인과 함께 간이 미사를 드린다.

 

이날은 지도신부님이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떠나 외부에서 신부님을 초청하였다.

 

간이미사는 외부신부님이 집전하므로 미사 준비에서 마칠 때 까지 성당을 지켜야했다.

 

그날따라 이유 없이 미사에 참석하기 싫어 추석을 핑계 삼아 오전에 부모님이 계시는

인천집으로 피해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왠지 마음도 무겁고 불안해서

모든 계획을 중단하고 미사에 참석하였다.

 

마침 그날은 평신도의 날로써 강론시간의 일부를 나에게 맡겼다.

 

그러나 성서에 대한 부담과 사전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미사강론은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와 신부님과 눈맞춤을 피해 다녔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강론을 수락하고야 말았다.

 

주제는 성당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익숙한 성호경을 선택하고

구체적인 강론에 대한 고민과 갈등 끝에

피겨의 여왕 김연아(본명스텔라)를 주제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 시합에 출전하기전 빙상위를 미끄러지듯 몸풀면서

세레모니로 성호경을 긋는다.

 

나는 이 장면을 착안 강론의 주제를 김연아의 모습을 흉내내는

시뮬레이션과 설명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어리숙하고 어리버리했던 강론은 신부님의 미소로 나 자신에 대한 보상과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공식적인 간이미사를 종결한 후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승용차의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높여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의 애마 적토마는 천안 개미고개 정상에 우뚝서있었다.

 

그날은 추석 당일 탓인지 고속도로는 비교적 한가로워 차량은 자유자재로 달리고

특히 노련한 운전자는 빛의 속도로 여유로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제멋대로 달리고 있었다.

 

나의 노선도 예외없이 여유공간이 많아 100km의 속도를 유지하고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텅빈공간에서 보이는 빨간 승용차는 한마리 개미처럼 작게 보여

편안한 마음에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엑셀을 밟고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물가물하게 보였던 빨간승용차는 10m전방에서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란 마음에 급브레이크를 끼끼긱~밟았다.

 

급정거한 차량은 가속도에 밀려 타이어 타는 냄새와 함께 우측90도로 휘~

돌아 중앙차선을 넘어가고 말았다.

 

이때 뒤에서 달려오던 승용차는 자신의 속도를 이기지 못해 내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나의 차는 와장창 소리와 함께 빙그르 또한번 회전하면서

가변도로에 서있는 방호벽에 부딪쳐 튕기면서 시동은 꺼졌다.

 

이때 달려오던 홈플러스 10t트럭은 나를 발견하고 긴박한 굉음 소리를 내면서

급정거를 하였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핸들에 고개를 파묻고 아무런 행동도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하고 태연하게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달려오는 트럭을 막연히 바라보면서 이제는 죽었구나라는

탄식소리와 함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같은 찰나의 순간에 허무맹량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사람이 죽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특히 자살을 기도하기 위해 다리위에서 뛰어 내릴 때 0.001초의 흘러가는

짧은 순간과 비행기나 거대한 배가 침몰되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은 어떤 감정이고 어떤 느낌인지 무척 알고 싶었다.

 

제기되는 궁금증은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다시말해 질문의 답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체념과 무념무상의 포기상태가 전부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무서움이나 두려움 보다는 오히려 차분하고 지극히 평온하였다.

 

흔히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는 죽음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천운이였을까? 아니면 성모님의 가호였을까?

 

홈플러스 10t트럭과 찌그러진 나의 사고차량의 거리는 약50cm정도에서

 트럭이 멈춰 정면충돌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난 트럭기사는 핏기없는 하얀얼굴과 초점 잃은 눈빛으로

땅바닥에 멍~한상태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찌그러진 사고차량속에 갇혀있는 나는 주변사람의 도움으로 창문틈사이로 겨우 빠져나왔다.

 

엄청난 사고의 충격과 후유증의 탓인지 사고당사자는 너무나 태연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이상한 행동과 홈플러스 트럭기사의 안위를 걱정하고 안심시키는

나 자신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수위는 일정한 기준선이 있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큰 충격은

그것을 수용하는 한계를 넘어서면 오히려 태연해지고 차분해지는 것이라고...

 

한잔의 커피가 식을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 정상적인 이성이 되돌아 주변을 살펴보니

교통사고의 현장의 당사자는 제3자가 아닌 나 자신이였다.

 

그리고 사고 후유중에 대한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뒷통수를 만져보고

혹시 피흘리는 부분이 없을까? 왼손오른손을 번갈아 만져보고 눌려보았다.

 

특히 머리의 경추와 남자의 허리는 매우 중요하므로 양손을 머리를 붙들고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돌려보았다.

 

또한 팔 다리부분을 국민체조하듯이 올렸다 내렸다 반복동작으로

공항의 검문 수색대보다 더 세밀하게 몸수색을 하였다

 

이렇게 5분정도 구석구석 살펴보았는데 이상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완전무결하게 부상이 없는 것이 서운하였는지

왼쪽검지손가락 3번째 마디에 볼펜심으로 살짝 긁히는 정도의 찰과상이 보일뿐

그이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떨떨하고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나의 애마 사고차량은 현장에서 즉시 폐차시키고 렉카차에 편승하여 집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긴박하게 흘러갔던 순간을 정리하면서 잠을 청하였다.

 

처음에는 무반응처럼 여겨졌던 사고현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재연되어 버스안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잠을 포기하고 말았다.

 

인간은 망각을 해야만이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보통의 인간들보다 잊기를 잘하는 동물에 속한다.

 

충격적이였던 사고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지면서

썰물처럼 싸~악 빠져나갈것으로 생각하였다.

 

사고 전·후의 일상은 변함없이 아침에는 때양이 떠오르고

도로에는 어김없이 자동차로 북적거렸다.

 

나의 큰 장점은 망각이다.

 

아마 대한민국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 전날의 사고를 까맣게 잊고 택시를 타고 시내 드라이브를 하였는데

잊었던 사고의 기억이 되살아나 동서남북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를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려워 중도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자동차가 악마처럼 징그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수년간 사고의 후유증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지금은 어느정도 두려운 마음은 사라졌지만, 완전한 해방이 아니다.

 

특히, 비가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불안증세가 나타나 가급적이면 운전을 자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은 외모와는 다르게 새색시처럼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시속100km이상을 속도를 유지하고 최고의 스피드를 즐기는

마니아들은 곡예하 듯 달리는 고속도로를 좋아하지만,

나는 광속의 스피드는 아주 싫어한다.

 

정체구간이 심하고 60km이하의 속도를 유지하는 도로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 도로를 좋아한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흘러 사고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구사일생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덤으로 사는 인생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나? 심각하게 질문을 해보았다.

 

그리고 지난날의 충격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되집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엄청난 사고이후 나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누군가의 양팔속에 갇혀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자 소름이 확 돋아났다.

 

그리고 만약이라는 가정을 유추해 보았다.

 

사고당일 당초의 계획대로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오전에 출발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지금처럼 털끝만큼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어둡고 차가운 흙속에 잠들어 있을까?

 

감히 장담하건데 미사 참석 하지않고 오전에 출발했다면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은 지구상에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인 상태를 정확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구사일생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해야 할것인가를

명확한 결론을 짓게 되면서 삶의 방식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교통사고 이전까지는 자기중심적 삶이였다면 사고이후는 타인을 위해서 밀알같은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행동과 안목이 펼치게 되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는 계기가 된것 같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을 바꾼다는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였다.

 

그렇지만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는 달팽이처럼 또는 굼벵이처럼 조금씩 기어가면서 바꾸어 보리라.

 

몇가지 남은 기적같은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생각하기로 하고 이만 총총...

 

  • haeinjo

    다른 기적같은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2014-03-06 17:20:20
  • sebabass

    정말 기적이네요!!!

    2014-03-12 20: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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